이원석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출근하고 있다./뉴스1

예견은 됐지만 발표가 ‘기습적’이었던 이번 검사장 인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검사들도 “이게 뭐냐”며 뜨악해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의혹’ 수사가 한창인데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통째 바꾼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의 대검 참모도 대부분 갈렸다.

총선이 끝나자 이 총장은 ‘명품 백’ 수사팀의 보강과 수사 본격화를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지시했다. 이 사실은 대검 관계자들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고 기사화됐다. 이 총장 임기는 넉 달 정도 남았다. 이 총장은 자기 임기 내에 ‘명품 백’ 사건을 정리하고 물러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정권 때 시작됐던 ‘도이치모터스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22대 국회 상황에 따라 두 사건이 특검으로 갈 가능성도 의식해야 했다.

법조계에서는 두 사건에 대해 ‘김건희 여사, 불기소 처분’ 전망이 우세하다. 명품 백 사건은 김 여사를 처벌할 조항이 청탁금지법에는 없다. 파우치백을 선물한 재미교포 목사도 ‘직무 관련성’을 부인한다. 그래야 목사 본인이 처벌받지 않는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김 여사 모녀의 23억원 수익’ 같은 얘기로 야권이 ‘특검 분위기’를 잡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봐서 그런 걸로 김 여사의 ‘시세 조종’ 혐의를 구성하긴 어렵다. 그 정도로 가능했으면 문재인 검찰은 진작에 김 여사를 기소했다. 그때 기소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범들의 재판을 쭉 지켜본 인사들의 얘기도 비슷하다. 물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증거나 증언이 드러난다면 국면은 달라진다.

이원석 총장은 아마 ‘할 만큼 하고 쪽 팔리지 않게 그만두겠다’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검찰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는 크게 봐서 윤석열 정권의 이해관계와 상충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의 지휘 라인을 모두 교체함으로써 ‘대통령 부인 방탄용’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윤석열 사단’ 출신의 법조인들까지 “누구보다 검찰 생리를 잘 아는, 문재인 정권 검찰총장 때 비슷한 일을 겪었던 석열이형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인사를 ‘검찰 내부의 한동훈·이원석 라인 정리’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과 가깝고 한동훈과 먼 검사를 발탁한다’는 ‘윤가근 한가원(尹可近 韓可遠)’에 따라 한동훈·이원석과 가깝다는 검사들을 2선으로 뺐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감정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얘기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이원석 총장은 인사 발표 다음 날 출근길에 검사장 인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7초간 침묵하면서 말을 아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이번에 직(職)을 걸진 않았다. 필자는 이 총장이 ‘사퇴 카드’를 아껴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16일 김 여사 관련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잘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명품 백 사건’이든, ‘도이치모터스 사건’이든 결론을 내리려면 ‘김 여사 조사’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조사 형식이 쟁점이 될 것이다. 서면 조사, 검찰의 방문 조사, 김 여사의 검찰청 출석 등의 방법을 놓고 용산(대통령실)과 서초동(총장)의 조율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을까. 그때 수사팀과 이 지검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권력 수사에 ‘봐주기’ 논란이 끼어들 때 타격을 입는 것은 권력 쪽이다. 그 과정에서 정권과 검찰총장이 충돌한다면? ‘자기 여자 지키는 게 상남자의 도리’ 같은 주장은 끼어들 여지도 없다. 총선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은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좋은 얘기지만, 윤 대통령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서초동’까지 정치 현안으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