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활’과 ‘서초동 생활’을 번갈아 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더 바빠지게 됐다. 경기도지사 시절 데리고 있던 이화영 부지사가 중형(重刑)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쌍방울 그룹이 800만달러를 북한에 불법으로 보낸 사건의 윗선으로 지목돼 왔다. 검찰은 곧 이 대표를 추가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세 가지 재판을 받아왔다. 하나는 배임 등 여러 혐의가 걸린 대장동·위례신도시·백현동·성남FC 의혹 사건이다. 5월 7일·14일·21일 이 재판이 열렸다. 다른 하나가 17일과 31일 이 대표가 출석한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고 셋째가 검사 사칭 사건 관련 위증(僞證)교사 의혹 재판이다. 27일로 재판 날짜가 잡혔었다. 공휴일과 토·일요일을 뺀 업무일이 21일이었던 지난 5월 이 대표는 6일을 서초동에서 보냈다.

이 대표의 ‘여의도 생활’과 ‘서초동 생활’은 천지 차이가 있다. 여의도 생활은 국회도 당(黨)도 모든 일정이 이 대표에게 맞춰 돌아간다. 이 대표가 ‘탄핵하겠다’ ‘특검(特檢)하겠다’ ‘국정조사하겠다’ 하면 신문에 굵은 활자로 제목이 뽑히고 TV의 주요 뉴스가 된다.

서초동에서 이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이 아니라 형사재판 피고인일 따름이다. 이 대표가 법원 재판 날짜에 맞춰야 한다. 작년 10월 대장동 재판에선 7분 지각했다가 ‘다음 재판부터는 10분 일찍 출석하라’는 재판장의 꾸지람을 들었다. 서초동에서 이 대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이 대표는 재판 가운데 하나에서라도 금고 이상의 형(刑)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대통령선거 출마 자격을 상실한다. 형사 재판 1심에선 100명 중 97명이 유죄 선고를 받는다. 이 대표가 바늘구멍 같은 4개 재판을 모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런 이 대표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민주당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건 규모는 대장동·백현동 재판이 가장 크다. 현재까지 검찰과 이 대표 측이 신청한 증인 숫자만도 200명이 넘는다. 증인이 80명이던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3년 5개월이 걸렸다. 대장동 사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재판부가 마음만 먹으면 속도를 낼 수 있는 게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 재판이다.

공직선거법 270조는 ‘선거법 위반 사건은 검찰의 공소 제기 후 6개월 이내에 1심 판결을 내려야 하고, 고등법원·대법원도 사건이 넘어오면 각각 3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은 거의 2년이 다 되도록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년 5개월 동안 사건을 쥐고 거북이 재판을 하던 판사가 올해 초 갑자기 사표를 제출해 버렸다.

위증교사 재판은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재판이다. 위증교사를 받은 증인의 전화 통화 내용이 확보됐고 당사자가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이 대표 영장을 기각한 판사조차 이것을 분명한 증거로 인정했을 정도다. 이 재판이 이 대표의 첫 올가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 지연 작전을 펴는 이 대표와 신속한 재판 진행을 주장하는 검찰의 머릿속에는 헌법 84조가 들어있다.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곤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가 1심·2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더라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지 않으면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 재판이 중단된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각종 재판에서 자신과 수족(手足)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에게 ‘국회의원 임명장’을 주고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한사코 움켜쥔 것도 이런 의도다.

만일 이 대표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에 그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나 선거 전(前)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오면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기형(畸形) 정당으로 정치적 파산(破產) 사태를 맞게 된다. 이 대표의 성공 또는 절반의 성공은 투표를 통한 국민의 대통령 선출권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지금 서초동에서 진행되는 이 대표 재판은 조직 폭력단 내부의 의리와 배신과 의문의 죽음이 뒤섞인 마피아 영화를 빼닮았다. 이 대표는 작년 10월 6일 대장동 재판에서 재판부에 공범(共犯)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껴안을 기회를 달라고 해 서로 얼싸안았다. 마피아 영화 판박이지만, 이 재판은 대한민국 헌법과 정치·사법제도의 시험대라는 영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