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 증시 밸류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상속세 개편과 함께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행 상법은 이사 충실 의무의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항에 ‘총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소액주주 보호 의무를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 논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경제 이슈 점검 회의에서 “투자자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 충실 의무의 대상 확대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언급했고,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법무부·금융위원회와 함께 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했다. 올해 초만 해도 반대 입장을 밝혔던 법무부 역시 적극 검토로 선회했다. 과도한 상속세 개편이 기업인들을 위한 ‘당근’이라면, 소액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는 오너 경영자 중심의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재계는 그간 친(親)기업 기조를 유지해 온 정부의 변심에 술렁이고 있다. 주주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경제인협회도 10일 “상법 개정안은 지분이 더 많은 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주식회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 자료를 냈다. ‘걸면 걸리는’ 식의 배임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입법 사례가 없는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까지 더해지면 경영자들은 끊임없이 송사(訟事)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인수·합병이나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꼼짝없이 배임죄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다는 것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일반 주주도 기관이냐 개인이냐, 단기 투자자냐 장기 투자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린다”면서 “대형 투자나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라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 기업인은 “요즘 기업인들은 새로운 투자를 할 때면 사업성을 따지기 전에 법전(法典)부터 뒤져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배임죄를 무서워한다”면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이사진들은 회사의 미래가 어찌 되든 말든 임기 내내 주가 관리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이 법의 악용 가능성이다. 과거 삼성물산 합병 때 악명을 떨친 엘리엇 펀드 등 기업사냥꾼과 기업 지배 구조 개편에 목숨을 거는 좌파 시민 단체, 그리고 국민연금을 앞세운 정부가 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엘리엇은 2018년 현대차 계열사 주식을 1조원가량 매입한 뒤 현대차 계열사 재편과 배당 확대, 사외 이사 선임을 요구했고, 한국 증시의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도 문재인 정부 시절 스튜어드십코드(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 한 기업인은 “기업사냥꾼이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 기밀과 투자 정보를 빼내거나 좌파 시민 단체와 반기업 성향의 정부가 주주 자격으로 정보를 취득해 기업을 공격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오면 기업은 한마디로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너 경영자 중심의 기업 지배 구조와 이로 인한 인색한 배당을 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들의 혁신 능력과 기업의 미래 성장성이다. 따져보면 삼성전자(68%)·현대차(25%)·SK텔레콤(70%)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작년 배당 성향은 이미 글로벌 기업 수준이다. 한국 전체 기업들의 배당 성향이 선진국보다 뒤처지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배당 여력이 떨어진 탓이 더 크다. 선한 투자자의 표상인 워런 버핏은 현금이 있으면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것이 진정한 주주 정책이며, 그럴 자신이 없으면 배당을 하라고 했다. 한국 기업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정부의 상법 개정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