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22년 7월 17일 "조국해방전쟁승리(6·25전쟁 휴전) 60돌(2013년)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가 훌륭히 일어선 때로부터 지난 9년간 연 190만6000여명의 각 계층 근로자들과 인민군 군인들, 청소년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열사들에게 경의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71년이다. 북한에선 이날을 ‘전쟁 승리의 날’이라고 한다. 사회 전체가 거짓 위에 서서 거짓으로 돌아가는 곳이니 무슨 이름을 붙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북한에 우리 서울 동작동 현충원과 같은 국립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 승리’라면서 정작 그 ‘영웅’들을 기리는 곳이 없는 것이다. 북에도 혁명렬사릉, 애국렬사릉, 참전렬사묘가 있지만 모두 간부나 특별 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1000~2000명 정도다. 우리 2개 현충원과 6개 호국원에 묻힌 군경은 현재 29만7500여 명에 달한다.

6·25전쟁에서 국군은 13만7000여 명이 전사했다. 부상자는 45만명에 달한다. 국군 전사상자와 참전 군경은 원하면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미처 찾지 못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71년이 지난 지금도 6·25 격전지 산속에서 유해 발굴팀이 땀을 흘리고 있다. ‘ㅇㅇㅇ 일병의 유해가 확인돼 가족에게 인계’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 어떤 소식보다 이 나라가 굳건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아버님과 장인이 묻힌 호국원을 찾을 때면 ‘내 세금이 올바로 쓰여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분의 유해에 덮였던 태극기도 잊히지 않는다.

6·25 때 북한군 전사자는 52만여 명, 부상자는 17만여 명이다. 유엔군의 압도적 화력에 인명 피해가 극심했고 치료가 안 되니 부상을 당하면 대부분 사망했다. 김일성의 명령으로 이렇게 수많은 목숨이 스러졌는데 정작 북한에는 그들을 위한 묘지조차 없다. 북한에 우리와 같은 현충원이 없는 이유를 여러 탈북민에게 물어보았으나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느 분은 “물어보시니까 처음 생각해봤다”면서 “북에 있을 때는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분은 “여기저기 동네에 중공군 묘지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북한 인민군 묘지는 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북한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필자가 탈북민들을 만나고 그들이 쓴 책, 동영상을 통해 그 답을 찾으면서 어쩌면 이것이 한국인·한국군과 북한인·북한군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자유인이고 국군은 자유 국민의 군대다. 북한인은 김정은의 노비이고 북한군은 김정은 단 한 명의 군대다. 자유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면 동료 자유인들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 상징이 현충원과 호국원이다. 하지만 노비가 죽으면 주인의 자산 명세서에서 삭제되는 것으로 끝이다. 세계 역사 어디서나 그랬다. 그래서 북한에 중공군의 묘지는 있지만 북한군의 묘지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 북한은 수십 개의 신분으로 나뉜 완전한 카스트 사회다. 태어나면서 부모의 신분을 세습한다. 직업도 세습한다. 아비가 농부면 자식도 농부, 아비가 광부면 자식도 광부다. 북한군은 이들 노비의 자식으로 구성된다. 평양의 간부집 자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스펙을 쌓기 위해 가더라도 실질적 복무는 하지 않는다. 뇌물만 쓰면 부대를 나와 몇 년씩 집에서 살 수도 있다. 북한 ‘참전렬사묘’는 이들 특권층이 가는 곳이다.

북한군에는 ‘허약이 온다’는 말이 있다. 영양실조다. 군부대에 흔하다. 머리카락이 노래지고 눈이 커지다가 설사를 하고 심하면 죽는다. 푹 꺼진 쇄골에 물건을 넣을 수도 있다고 한다. 유골은 아무 곳이나 묻는데 유족은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부대까지 가려면 열흘 넘게 걸리니 여비가 없어 갈 수가 없다. 이곳에 무슨 국립묘지인가.

북한군 사이의 진짜 대화는 ‘먹는 것’뿐이라고 한다. 북한군 시절 ‘한국군이 대포로 빵이나 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탈북민도 있다. 압록강, 두만강가에서 촬영된 북한군 막사는 흙으로 된 움막이다. 북한 여군들이 움막 밖 햇볕에 모여 앉아 서로 이를 잡아주고 있다. 원숭이 떼와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이 국립묘지라는 것이 있는지 알 리도 없다.

북한 주민은 미군보다 인민군을 더 무서워한다. 총 든 노비가 총 없는 노비를 강탈한다. 당 간부, 군 간부들은 북 주민들을 절망에 빠뜨린 화폐 개혁도 먼저 알았다. 기존 화폐를 물건으로 바꿔놓고 화폐 개혁 후에 되팔아 큰돈을 벌었다. 그 와중에 많은 주민은 자살했다. 북한에 북한군을 위한 국립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있겠는가.

세상 일에 ‘100%’는 없으니 남침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전면전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군인은 굶주려 있고 군대는 부패했으며, 탱크와 포는 제대로 작동하면 신기한 것이 북한군 실상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 한계는 그들이 자유인이 아닌 노비라는 사실이다. 서울 현충원에는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는 문귀가 새겨져 있다. 그 앞에 서서 이 현충원 호국원의 존재 자체가 우리 자유와 그 무한한 가능성의 증거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