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대통령실·뉴스1

대선 기간이었던 2022년 1월, 김건희 여사와 인터넷 방송 ‘서울의 소리’ 관계자의 대화 내용이 공개됐을 때였다. 국민의힘은 “다자간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유포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 대상”이라며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통화 내용 유출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 나의 동의도 없이 몰래 공개된다는 것은 매우 난처하고 분개할 일이다. 피해 당사자로선 누가 왜 공개하고 유출했는지 반드시 밝혀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다.

최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김 여사가 지난 1월 명품 가방 문제로 나눴다는 문자 내용이 거의 통째로 공개됐다. 보통 사람도 아닌 권력 내부자들의 문자 내용이 그대로 유출됐는데 반응이 의외다. 대통령실은 누가 어떤 경로로 유출했는지 따지지 않은 채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 대통령실은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입장만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이건 일종의 ‘당무 개입’이나 ‘전대 개입’”이라고 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전당대회에 개입하려 했는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둘만의 문자 내용이 공개된 경위보다는 오히려 문자 내용을 두고 당대표 후보들 간에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하며 공방을 벌였을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기획했을 ‘문자 파동’으로 집권당 대표를 뽑고 결속을 다져야 할 전당대회가 만신창이가 됐다. 배신자다, 아니다,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 없다 싸움뿐이다. 몸싸움을 하더니 무슨 청탁을 했느니 안 했느니 점입가경이다. 야당은 문자 내용을 근거로 “한동훈 후보가 장관 시절 댓글팀을 운영한 의혹이 있다”며 특검을 꺼내 들었다.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에는 당무 개입 의혹이, 한 전 위원장에게는 댓글팀 의혹이라는 악재들만 쌓여간다. ‘문자 파동’은 정치적 자해이면서 한동훈과 김 여사뿐 아니라 여권 전체를 최악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데도 당사자 동의를 받은 문자 공개인지, 몰래한 문자 유출인지 묻고 따지지 않는다. 문자 파동으로 한동훈이 득 볼 것은 없기 때문에 그쪽에서 유출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문자 유출이라면 대통령실이 발 벗고 나서 경위를 따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문자 공개에 동의했거나 아니면 제공했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김 여사의 침묵에 대해선 추측만 할 뿐이다. 국민의힘조차 여권을 준내전 상황으로 만든 정치적 일탈을 당연시하는 듯, 문자 파동 주도 세력 규명에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실을 거치지 않고 영부인이 집권당 비대위원장에게 자신의 명품 가방 사과를 언급한 것도 이상한데 이 문자 내용이 여당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이용되는 상황까지 왔다. 대통령 부인을 정치의 한복판에 불러 세우고 야당에 1년 치 먹잇감을 준 중대 사건을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관망한다. 여권 관계자는 “문자 공개 경위가 알려지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정치 드라마 ‘돌풍’에서는 대통령 시해 시도가 너무 비현실적 상황에서 이뤄진다. 현실 정치에선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부인과 대통령 핵심 측근이 나눈 대화 내용이 유출돼 여권 전체가 요동치는데, 당사자들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침묵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말도 안 된다” 했을 것이다. 드라마 작가도 상상 못 했을 무서운 일이라서 그렇다.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