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라이브시티 조감도. /경기도

CJ라이브시티는 고양시민들의 오랜 꿈이었다. 일산 킨텍스전시장 인근에 국내 최대 규모의 K팝 아레나(공연장)와 상업·호텔·업무 시설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한국 엔터 산업의 성지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믿었다. BTS·뉴진스 같은 톱스타들이 아레나에서 공연하고 매년 200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게 되면 판교 등 경기 남부에 비해 낙후된 이미지가 확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아파트뿐인 베드타운’ ‘집값 상승률 꼴찌 신도시’ 등 속쓰린 수식어도 사라질 것이다. 공사 진행이 더딘 게 답답하지만 고금리와 건설비 폭등 여파로 전국의 개발 프로젝트가 줄줄이 좌초하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가(家)의 원조 한류 기업 CJ가 사업을 주도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부지 매입과 각종 사업비로 이미 7000억원이나 쏟아부은 CJ그룹이 사업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시민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터졌다. 경기도가 CJ와 맺은 라이브시티 사업 협약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지난 8년간 부대 시설을 포함한 전체 사업 공정률이 3%(아레나는 17%)에 불과하다. 사업 추진 의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공공 개발로 전환해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또 “특혜·배임 문제가 있다고 수없이 밝혔는데도 CJ가 사업 지연에 따른 배상금인 지체상금(약 1000억원)을 깎아달라는 무리한 요구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8년간의 사업 진행 과정을 되짚어 보면 사업 무산의 책임을 CJ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선 라이브시티 인허가를 받는 데에만 50개월이 소요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몰이와 맞물려 11개월간 경기도 의회의 사무조사를 받았다. 의혹의 근거도 없었다. CJ가 박근혜 정부와 불편한 관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뜬금없기까지 했다. 이후 2, 3차 사업계획 승인(경기도 27개월 소요), 아레나 건축허가(고양시 12개월)를 거치면서 저금리·저물가의 호기(好機)를 허비해 버렸다. 문 정부도 입버릇처럼 각종 인허가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원스톱’ 행정을 강조해 왔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고금리가 겹치면서 건설비가 폭등했고 결정적으로 전력 공급까지 차질이 생겼다. 작년 2월 한전은 전력망 부족으로 아레나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시설에 대해서는 최소 2028년까지 대용량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해 CJ를 ‘멘붕’에 빠뜨렸다. 전기 공급이 안 되면 호텔이나 상업시설은 아예 공사를 진행할 수 없고, 부대 시설 없는 아레나는 10년 적자를 기록한 킨텍스전시장처럼 상당 기간 적자를 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은 계속 쌓인다.

더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경기도가 중앙 정부 중재안마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말 민관 합동 조정위원회를 통해 지체상금 감면과 공사 기한 재조정을 골자로 한 중재안을 냈지만 경기도는 특혜·배임 우려로 수용을 거부했다. 또 경기도 스스로가 정부 중재안에 대해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을 의뢰하고도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업 해지를 통보해 버렸다. 작년 말 완공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 대해 인천공항공사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부지를 제공하고 정부가 39개월의 기한 연장을 해준 것과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조치였다.

경기도가 신속한 공공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고양시민들은 시민청원과 시위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실제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서울시 예산마저 줄인 마당에 야당 도지사를 위해 예정에 없던 예산을 지원할 리 없는 데다 정부 자금이 들어가면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통과에만 족히 2~3년은 걸린다. 또 소송을 예고한 CJ와 법정 다툼을 하다 보면 사업 현장은 수년간 흉물처럼 방치된다. 언제부터인가 공직사회는 과도한 행정의 정치화로 특혜나 배임 우려가 나오면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한 기업이 7000억원을 투자한 사업을,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사업을 단칼에 엎어 버리는 게 공정 행정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