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 유명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올트먼이 2019년 11월부터 3년 동안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일은 적게 하고 (기본 소득을 뺀) 임금도 줄었다. /AFP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의 핵심 공약은 ‘먹사니즘’이라고 한다. 그 중심엔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주창해 온 ‘기본 소득’이 있다.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효과와 실현 가능성 등 논란이 작지 않은 이 기본 소득을 역대 최대급 규모로 실험한 결과가 지난주 발표됐다. 챗GPT로 유명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시작해 비영리 연구소 ‘오픈리서치’가 3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다.

올트먼은 기본 소득에 호의적이다. 테크계 거물이 대체로 그렇다. 빅테크 기업이 시장과 부(富)를 독점하는 데 따른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면죄부’처럼 기본 소득을 다룬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소개할 당시 올트먼은 이렇게 썼다.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고 막대한 부를 창출하면 언젠가 국가 차원의 기본 소득을 도입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 사회에 더 큰 이바지를 할까요?” 기본 소득으로 ‘밥벌이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리라는, 유토피아적 설렘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올트먼이 돈을 대 시작한 실험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2019년 11월부터 매달 1000달러(약 138만원)를 3년 동안 1000명에게 주고 삶의 변화를 추적했다. 500억원 가까운 돈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지난주 1차로 나온 보고서 두 건에 발표된 결과는 올트먼의 기대와 달랐다. 돈을 받은 사람들은 비교 그룹에 비해 연간 소득이 1500달러(기본 소득 제외) 줄었고, 일하는 시간은 한 주에 1.3시간가량 감소했다. 이렇게 얻은 시간을 자기 개발이나, 더 좋은 일자리를 찾거나, 육아 등 가족을 돌보는 데 쓰지도 않았다. 대부분 비생산적인 ‘이동 시간’ 등에 보냈다. IT 매체 와이어드가 미리 입수해 보도한 세 번째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빚도 더 내서, 결과적으로 자본(자산-부채)이 줄었다고 한다.

기본 소득 주창자들의 또 다른 논거는 일괄 지급한 돈이 사회 전반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 이 또한 ‘환상’에 가까웠다. 연구자들은 담담하게 결론을 적었다. “기본 소득은 건강 증진에 ‘무(無)’의 영향을 미쳤다.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선택적 복지가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올트먼은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식의 코멘트만 하고 말았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는 책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혁신과 사회 발전의 관계를 다뤘다. 혁신의 ‘과실’을 나누는 방식에 따라 제분(製粉) 기술이 극소수 영주와 교회의 배만 불린 중세의 암흑으로 갈지, 전기 기술이 전반적 생활 수준 향상을 이끈 산업혁명의 찬란함으로 갈지 사회의 운명이 갈린다는 것이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 첨단 반도체 등이 필수인 AI는 태생적으로 거대 기업 몇 곳의 독과점으로 수렴되기 쉬우므로 분배 방식을 특히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중 하나로 거론되는 기본 소득에 대해선 “‘당신들의 도태는 불가피하니 돈이라도 나눠주겠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내러티브”라고 반대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1%, 10% 혹은 20%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지. 빵 부스러기나 먹자’라며 행복해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재명은 “미래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노동력이 대체된다”며 “소비 수요를 유지하려면 기본 소득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AI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에서 내 삶의 효용이 ‘소비 수요 유지’라면 서글프지 않을까. 막대한 돈을 들인 결과가 일자리 위태로운 사람들의 ‘비생산적 잉여 시간의 증가’ 정도라면 국가는 이를 왜 도입해야 할까. 무엇보다 거대한 부를 만들어내 기본 소득의 재원을 댈 막강한 AI 기업이 한국에 있기는 한가.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기본 소득과 올트먼의 실험 결과를 보며 든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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