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경을 만지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민 눈높이’라는 단어다. 국민 눈높이는 국민이 바라보는 시각 또는 그 수준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그 말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디올백 받은 것을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뜻이고 해병대 사건을 특검으로라도 풀자는 뜻이 담겨있다. ‘사과’, ‘특검’이라는 단어를 쓰기 거북해서 눈높이로 치장 또는 위장한 것이리라. 이에 윤 대통령이 분노했고 그 좋던 형제지교가 깨졌다. 한동훈씨가 이끌었던 국힘당이 4·10 총선에서 참패하자 잠시 주춤했던 ‘국민 눈높이’는 그가 전당대회에서 승리하자 또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결론부터 말해서 한 대표는 왜 또다시 그 일에 말려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과’ 싸움을 지켜보던 국민도 이제는 지쳤다. ‘해라’ ’했다’ ‘아니다’로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자체가 이제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에 함몰돼 있을 것인가? 이제 사과 논쟁은 그만했으면 한다. 국민은 이미 각자가 그에 대한 판결을 마음속으로 이미 내렸다. 그래서 선거에서 졌다. 그런 만큼 이제 다른 산적한 국정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탄핵 놀이’에 함몰된 야당과 ‘개딸’들은 디올백과 이 문제를 천년만년 붙들고 시비하고 싶겠지만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경제생활이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집권 세력은 이제 다른 과제로 넘어가는 것이 진정 국민 눈높이에 합당한 것이리라.

한 대표가 당 대표로서 해야 할 첫 과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당을 정부와 일치시키는 것이 한 대표의 우선적 과제다. 솔직히 말해 한동훈은 윤석열을 떠나서 존재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동훈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의 검찰을 대표하는 동종인(同種人)이다. 그들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망하게 돼있다.

지금 한 대표의 처지에서 정통 보수정당을 개혁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현역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당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여당 중진들을 압도할 정치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당을 젊게 개혁적으로 또는 리버럴 보수 쪽으로 이끌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해내지 못한 당 장악을 몇몇 젊은 객원(客員)들을 데리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현실을 너무 모르는 과욕이다. 고색창연한 보수당 노선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소수당으로 패색이 짙어진 정당을 몇 청년 과객(過客)들로 개혁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당내에서는 벌써 친윤이니 친한이니 패 가르기가 나오고 누구를 어디에 앉힐 것이냐로 자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니 국민의힘 미래뿐 아니라 한 대표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일을 교훈 삼아 말하건대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당·정은 물론 윤·한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 대표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출구는 윤 대통령의 정책을 옹호해주고 정부를 위해 길을 뚫어주는 소수 여당으로서의 투신이다. 과거 다수 의석을 가진 집권당의 위세로 정부도 견제하고 야당도 다스리던 당 우위적 발상으로는 현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의 포용력과 지도력도 필수적이다. 당과 한 대표를 동반자 위상으로 보고 당과 당 대표를 대우하는 겸손한 리더십,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한 대표와 국힘당의 분골쇄신을 유도하기 어렵다. 한동훈은 더 이상 윤 대통령의 검찰 수하가 아니다. 검찰 출신, 법조 출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네 편, 내 편 가르며 옹졸하게들 굴지 말아야 한다.

한 대표가 여당의 공세에 맞받아치는 장면을 보면 마치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다투는 것을 연상케 한다. 한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받아친다. 그런데 여기는 법정이 아니다. 여당 대표가 검사도 아니다. 정치는 말싸움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대표 즉 당수는 말이 아니고 머리로 싸우는 사람이다. 한 대표는 이제 검사도 아니다. 정치인이다. 침몰해가고 있는 대한민국 보수 정권을 지켜낼 책임이 있는 ‘9회 말 구원투수’다. 지금 국민의 새로운 눈높이는 당·정이 서로 균열하지 않고 같이 힘을 합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내라는 것이다. 윤·한이 갈등하면 결국 이재명씨를 도와주는, 보수의 반역자들일 뿐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