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프랑스를 따돌리고 체코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일각에서 “덤핑으로 따냈다”는 말이 나왔다. 한수원은 확실히 프랑스 전력공사(EDF)보다 낮은 건설비를 제시했을 것이다. 세계원자력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당 3571달러)는 프랑스(7931달러)의 45%밖에 안 됐다. 이런 가격 경쟁력으로 입찰 경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이걸 덤핑이라고 하는 것은 물구나무 선 채로 보면서 세상이 뒤집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저가의 출혈 입찰로 국민과 기업에 손해를 끼쳤냐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아랍에미리트 4기를 포함해 원전을 32기 지었고 4기는 짓고 있다. 1년 내지 1년 반에 한 기씩 꾸준히 원전을 건설하면서, 부품·설비를 조달하고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 원자력 산업은 품질관리가 엄격하다. 특히 원자로 내 ‘1차 구역(nuclear island)’ 부품은 극심한 방사선과 고열·고압의 가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다는 보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밸브 하나라도 1차 구역에 납품하려면 어느 용광로에서 언제 나온 쇳물로 제작한 것인지부터 기록해 관리에 들어간다. 샘플 밸브로 성능 시험을 통과한 경우에만 그 샘플과 같은 쇳물의 밸브들이 납품 자격을 얻는다. 각 부품을 누가 언제 어떻게 설치했는지에 관한 설치 족보도 만들어 추적이 가능케 해야 한다. 외국 자료를 보면 구조강 비용의 41%, 콘크리트 비용의 23%가 이런 품질보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전 부품은 대개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지속 발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품 몇 개 팔려고 극도로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견뎌내는 기업이 별로 없을 것이다. 10년, 20년 만에 한 번씩 원전을 건설한다면 부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쌓아놓은 경험도 소진되고 말 것이다. 보증된 부품 공급 못지않게 정밀한 공정관리 능력도 중요하다. 공정 간 간섭을 최대한 줄여 여러 작업을 겹쳐 시행해야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노하우도 건설 사이클이 꾸준하게 돌아갈 때 쌓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그런 인적, 시스템적, 제도적 지식의 축적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기업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체코에서 우리와 수주 경쟁을 벌인 프랑스는 최근 20여 년 사이 핀란드에서 1기(올킬루오토 원전)를 건설했고 자국 내 1기(플라망빌)를 짓고 있지만 둘 다 참혹할 정도의 공기 지연과 경비 증가를 겪었다. 한국의 바라카 원전은 기당 평균 8년이 걸렸는데 올킬루오토 원전은 건설에 17년이나 걸렸다. 경험이 부족한 하청 기업들이 콘크리트 배합 등에서 실책을 거듭했다. 37억유로로 목표했던 건설비는 110억유로(약 16조원)로 뛰었다. 건설을 맡은 원전 기업 아레바는 신용 등급 강등을 거쳐 원전 사업 부문을 EDF로 넘겨야 했다. 역시 체코 원전 사업에 응찰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30년간 신규 원전 수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2009년 원전 네 기 건설을 시도했다가 두 기는 포기했고 두 기를 예정보다 7년 늦은 올해 겨우 완공했다. 두 기의 공사비는 원래 140억달러(약 19조원)로 예정했는데 최종 평가액은 340억달러(약 47조원)였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 신청을 거쳐 2018년 캐나다 자산 운용사로 넘어갔다.

프랑스 원전(EPR)은 2중 격납 구조, 미국 원전(AP1000)은 피동 안전 설계를 처음 적용한 이른바 초(初)호기였다. 반면 한국의 APR1400은 국내외에서 8기 건설을 완료했고 4기를 건설 중인 N차 호기이다. 입증된 설계로 여러 호기를 건설하기 때문에 반복 건설을 통해 설계와 공정이 매번 개선되고, 시행착오가 줄고, 부품·설비와 건설 과정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기자재를 싸게 조달하고, 재고 관리가 용이하고, 경험·지식 축적으로 공기가 단축되고, 설계·인허가 비용 부담을 여러 연속 호기가 질 수 있고, 자본 조달 비용은 낮출 수 있다.

원전의 안전도 최신 설비를 겹겹이 갖다 붙여 매번 새 노형을 다시 설계하기보다, 표준 노형을 누가 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건설하고 운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한국 원전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항공 여행 안전이 개선된 것은 비행기 설계가 개선된 점도 있겠지만 항공사들이 승무원들을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고, 항공 당국도 항공 통제사들을 철저히 교육한 덕분이 크다고 한다.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겐 이런 관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