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라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나라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헤매는 나라는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나라가 갈 길을 잃고 어영부영 기회를 날려보내는 것은 정치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낡은 이념에 붙들릴 때, 고장난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집착할 때, 지도부가 지도자답지 못할 때 국가는 헤매게 된다. 후진국은 늘 방황하고 선진국과 반(半)선진국은 항상 바른 길을 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헤매고 있다. 22대 국회는 지난 5월 30일 문을 열었다. 이후 두 달 동안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률안이 몇 개고, 발의(發議) 처리한 특검안 탄핵안이 몇 개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임명 하루 만에 탄핵안을 제출, 취임 이틀 만에 통과시켰다. 야당의 일방 독주(獨走)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멈출 전망은 없다. 1948년 5월 30일 헌법을 만드는 제헌(制憲)국회가 처음 소집된 이래 처음 보는 국회이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나라가 가사(假死) 상태에 빠졌다.
야당의 본업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대안(代案) 세력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줘 다음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실현하려 한다. 민주당과 조국 신당은 ‘3년은 너무 길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 만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전에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다.
특히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유죄 확정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정부를 마비시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조기(早期)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목표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상당수가 이 전 대표를 아버지로 우러르는 ‘어버이 정당’이다. 그 선봉인 개딸들은 이 전 대표 손끝만 바라보며 당내 모든 선거에서 90% 지지를 바친다. 현 사태를 ‘이재명의 난(亂)’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재명의 난’ 성공 여부는 ‘국민 호응’과 ‘상대 분열’에 달렸다. 가장 최근 조사에서 이 전 대표를 차기 지도자로 꼽는 비율은 22%였다. 취임 후 최저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록 28%보다도 낮다. 대통령 지지도는 30%대에서 20%대로 떨어졌지만 이 전 대표 지지도는 올해 들어 한 번도 30%대에 들어선 적이 없다.
이재명당(黨) 지지도는 27%로 국민의힘 33%보다 낮다. 총선에서 의석을 휩쓴 인천·경기 지역에서조차 국민의힘에 34대31로 밀린다. 서울에선 그 차이가 33대24로 더 크다. 난(亂)의 지도자에 대한 신망(信望)이 없고, 그 세력에 대한 국민 호응도 없다. 지도자를 이재명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하면 국민 호응이 높아질지 모른다.
이 전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낮은 지지가 대통령을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1639만표를 얻었다. 그 가운데 300만~400만 표가 대통령 곁을 떠난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남아있는 지지자들도 상당수가 ‘적극적 지지’에서 ‘소극적 지지’로 돌아섰다.
외면하고 돌아선 이유로 ‘민생과 물가’ 다음으로 꼽는 것이 ‘김건희 소동’이다. 한때 적극적 지지자였던 국민들은 대통령직(職)을 ‘가족 기업(family business)’처럼 착각하고 처신해온 대통령 부인과 부인 문제 근처만 가도 번번이 판단을 그르치는 대통령에 대해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은 대통령과 지지자를 묶는 이 헐렁한 고리만 깨뜨리면 난(亂)의 성패(成敗)가 달라질 거라며 도박을 하고 있다. 지지자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7년 전 탄핵이 더 나쁜 정권을 불러들인 나쁜 선택이었다고 후회하기 때문이다.
한동훈 대표는 ‘적자(赤字) 정권’의 상속자다. 윤 대통령은 당선 후 어느 자리에서 ‘검사 100명만 데리고 들어가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한다. 국민은 검사 출신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인사(人事)를 어떻게 하는지,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어떻게 하는지 알 만큼 안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다시 정권을 만드는 것은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병아리를 꺼내는 일’만큼 어렵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면서 헤매는 나라를 돌려 세우는 것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