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대응의 총아로 여겨왔던 전기차가 기로에 섰다. 엔진 없이 달리는 전기차에 대한 열광이 사라지며 전기차 시장이 캐즘(수요 정체기)에 빠진 가운데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 사건으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라는 또다른 암초를 만났다. 멀쩡하게 주차된 전기차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전기차 한 대 화재로 차량 40여 대가 전소되고 600여 대가 그을음·분진 피해를 입은 것에 이어 전기와 식수 공급 중단으로 470여 가구가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된 것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파괴력을 실감케 했다. 전기차가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몰린 탄소배출을 줄이기는커녕 자칫 아파트 주거가 많은 공동체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차의 모범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전기차 운행에서는 탄소배출이 ‘제로(0)’이지만 동력원인 전기 생산과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원료 채굴·가공, 폐차까지 전기차의 생애 전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해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배터리 생산을 위해서는 리튬·코발트·니켈·흑연 등 다양한 광물과 소재가 필요한데,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약 450㎏) 생산을 위해서는 무려 100배 이상의 광석을 가공해야 한다.(미국 맨해튼 연구소 분석) 철광석에서는 60~70%의 철을 뽑아내지만, 이 희귀 광물들은 철광석 가공 때보다 3~4배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도 추출률은 1%도 채 안 된다. 리튬 1kg을 생산하기 위해 무려 2200리터의 소금물을 정제해야 하고, 코발트 1kg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860kg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인도네시아·칠레 등 주요 생산국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회복하기 힘든 환경 훼손이 빚어지고 아이들을 열악한 환경의 채굴 작업에 동원하는 노동력 착취까지 벌어진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이어지는 전기차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자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독일 자동차 기업으로부터 제조 기술을 전수받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강력한 배터리 공급망을 앞세워 미국·유럽의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자 생산국이며, 배터리도 60% 이상을 생산한다. 특히 흑연·코발트·니켈·리튬 등 배터리 원료와 양극재·음극재·전해질 같은 핵심 부품의 공급망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 희귀 광물들의 주요 산지는 콩고·짐바브웨·남아공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지만 중국은 오래전에 돈 보따리를 풀어 광산 채굴권을 장악해 버렸다. 뉴욕타임스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중국 중심의 공급망 탈피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국 기업들과 협력하지 않고는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당장 독재 국가 중국이 아니면 툭하면 내전이 발생하고 게릴라가 설쳐대는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의 밀림, 해발 4000m의 남미 소금 호수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전기차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을 위해 막대한 구매 보조금을 뿌려온 데 대해서도 실효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민들이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부자(富者)들의 ‘세컨드 카’ 구매에 세금을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한국도 작년 약 3조원의 보조금을 썼는데, 이 금액이면 15년 동안 미뤄져온 위례신사선과 서부선 경전철을 동시에 건설할 수 있다. 또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대로 2030년까지 450만대의 전기차 전환을 달성하려면 앞으로도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써야 한다. 그렇게 돈을 쓰고도 올해같이 더운 여름이 계속된다면 암담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탄소중립 대책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의존도만 심화하는 전기차의 양적 확대보다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부 보조금 역시 전기차의 안전성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연구개발)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