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가 지난주 일본 최대 고등학교 야구 대회인 여름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다. 전교생이 약 160명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까지 간 여정은 흔치 않은 ‘언더도그 스토리’여서 감동을 주었다. 교토국제고가 이길 때마다 한국어 교가가 구장에 울렸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다. 축하 메시지가 많이 나왔고 대체로 긍정적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시 돋친 발언을 하는 이들이 역시 또 있었다. 교토국제고의 결승 진출에 “‘뉴라이트’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쿨한 자칭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자’들도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폄훼할 것”이라고 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야구 보고 나서 ‘뉴라이트’니 ‘탈민족 좌파 국제주의’ 운운하면 참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친일파’ 같은 단어를 자꾸 써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만큼은 다른 세상 같다. 이런 사람들이 멀쩡히 활동하고 있다. 22대 국회는 정쟁으로 마비돼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데,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반일 입법’만큼은 활발하다. 친일을 옹호하면 공직을 못 맡게 한다거나, 100여 년 전 일어난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유족을 찾아내 명예 회복을 시키자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형사처벌하겠단 얘기도 나온다.
무리수도 적지 않다. 조국혁신당이 주도해 발의한 법안 중엔 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도서관 이름에서 ‘중앙’을 빼자는 안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차별하기 위해 쓴 단어라는 취지라지만 이 명칭들은 정작 1970년대에 바뀌었다. 같은 논리면 중앙고속도로·중앙선을 비롯해 중앙이 들어간 기관 이름을 찾아내 전부 바꿔야 할 판이다. 지하철역의 낡은 독도 조형물 정리를 ‘윤석열 정부의 독도 지우기’라고 몰아세우는 민주당의 주장 또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적개심은 정치적 서사를 만들어내기에 유용한 도구다. 달리 말하면 ‘장사’가 된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치 소탕’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어 악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를 나치 폭정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라는 푸틴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부터가 유대인이기에 이상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먹히면 그만일 뿐, 증거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 정치권의 반일 담론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한때 반일·반미·반독재는 좌파 정치인이 즐겨 활용한 3종 세트였다. 16년 전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광우병으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며 선동해 반미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미국산 소고기를 다들 잘 먹을뿐더러 미국서 자식 공부시킨 정치인도 너무 많아 동력이 소멸됐다. 독재 얘기를 끄집어낼 계기도 이젠 딱히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반일 하나가 남았다. 셋 중 가장 역사가 길고 식민지 시대에 대한 기억이 깊이 각인되다 보니 반일의 수명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 사이 반일이 직업이 된 사람들이 정치권엔 점점 많아졌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 ‘정의기억연대’를 이끌던 윤미향 전 의원은 후원금 횡령 판결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지금도 반일 책을 쓰고 강연을 하러 다닌다.
한국의 일반 국민은 경제·문화 수준에 걸맞게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독극물” 같은 괴담과 선동에도 광우병 때처럼 흥분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과학과 상식을 더 믿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는 문화로, 스포츠는 스포츠대로 즐길 줄도 안다. 국가의 성장과 함께 국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만 반일에 매진하며 살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니까, 뭘 해도 자유이긴 하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반일 입법과 정치 활동에 내 세금이 투입되는 건 역시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