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의 몸싸움이 막 시작될 순간,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야 이 새X야, 안 튀어 나가?” 돌진한 것은 운동권 출신 초선, 소리를 지른 사람은 그의 운동권 선배인 보좌관이었다. 당시 한 의원은 “얼굴마담 뒤 진짜 운동권들이 국회를 주물럭거리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생태계는 특이한 구석이 있다. 운동권 출신 의원을 정점으로 보좌진, 시민 단체, 지자체가 ‘순환 구조’를 이룬다. 20여 년째 서로 챙겨주고 당겨주면서 이미 ‘정치로 먹고사니즘’을 실현해 냈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기업가 같은 전문직이 많은 국민의힘은 전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이거 안 해도 먹고살 걱정 없다”는 말을 정말 여러 번 들었다. “민주당은 결사체, 국민의힘은 자영업자연합회 같다”는 비유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는 자기 업(業)에 영혼까지 갈아 넣는다.
22대 당선자를 여럿 배출한 서울대 어느 학과 모임이 얼마 전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힘 A 의원의 인사말이 이랬다. “저는 지난 년 고시에 합격한 후 부 국장을 거쳐… 퇴임을 앞둔 시점에 이제 입법부에 진출하게 되어 여한이 없습니다.”
운동권 출신으로 과거 정부에서 주요직을 맡았던 B씨. 당시 청와대 인사들과 회식 중 대북 노선을 두고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는 와인 잔을 깬 후 파편을 쥐어 입에 넣고는 와그작 씹었고, 이후 그 독불장군은 상급자의 말도 무시했다고 한다. 민주당 의원이 되어 요즘 안하무인으로 구는 그를 보면, 그 소문에 과장은 있어도 ‘날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의 공격성은 전염된다. ‘이재명식 줄 세우기’는 민주당에서 유사 투사를 양산해 내는 중이다. ‘살인자’ 구호 난동을 부린 치과 의사·변호사 출신 전현희 의원은 길거리 출신 못지않다. 전통의 싸움꾼들과 ‘초선 깡패’들의 화력도 대단하다. ‘탄핵’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당이 다르면 동료 의원마저 겁박한다.
수적으로도, 화력으로도 여당은 열세다. 그나마 ‘선비답게’ 이성의 무기로 질서를 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운동권 세습법이나 전형적 포퓰리즘 법안 공동 발의자에서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법안 발의 상부상조, 즉 법안 발의 숫자를 늘리려고 자기 이름을 마구 빌려줘 ‘악법의 들러리’가 된 것이다. 정치가 목숨줄인 사람과 ‘여한 없는’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뻔하다.
사실 지난 총선에서 한동훈 비대위의 공천은 처음 약속과 달랐다. 보수 가치를 위해 뛴 이들, 당에서 먹고살아온 당직자나 보좌관 등 정치 신인은 후순위로 밀렸다. 텃밭 물갈이도 하지 않아 현역 당선자가 가장 많은 곳이 TK였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투쟁력보다 스펙’을 보는 여당의 선구안과 태도는 ‘짐승의 시대’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나경원 후보가 크게 다퉜다. 지난 2019년 민주당의 패스트 트랙 일방 처리를 막다가 생긴 불상사로 기소된 사건을 두고서였다. “나 의원이 공소 취하를 부탁했다” “그게 내 개인 민원이냐” 그 언쟁에서 두 보수 엘리트의 정직성과 한계를 동시에 봤다.
“민주당의 악행을 막을 수 있다면 전과 10범도, 20범도 두렵지 않다.” 누구라도 이런 말을 했다면, 여당의 투쟁력을 보는 국민의 눈길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참고로 해직 교사 부당 특채로 지난 29일 직을 상실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이런 단체 문자를 보냈다. “조희연과 함께했던 혁신 교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