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맨 오른쪽) 대통령 후보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인 2015년 뉴질랜드 출장지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유동규(가운데) 전 기획본부장, 고(故) 김문기(뒷줄 맨 왼쪽) 개발사업 1처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 이 사진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당시 이 후보가 착용한 모자에‘볼마커(골프장에서 쓰는 도구)’가 꽂혀 있다”며“출장 가서 골프도 친 것이냐”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기인 성남시의원 제공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에선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다. 그가 직접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말하는 이 자리에서 자주 나왔던 단어들은 ‘하급 실무자’ ‘하위 직원’이었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방송에서 대장동 핵심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 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에는 몰랐다고 한 발언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2009년 리모델링 토론회에서 김씨를 알았고 2015년 호주 출장도 동행해 이 발언이 거짓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김씨가 하급자였기 때문에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도 “유동규 밑의 직원에 불과하다” “하급 실무자가 시장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했다. 김씨는 공사 실세이던 유동규 본부장의 바로 밑 팀장이었다.

대장동 사건이 최대 쟁점이던 지난 대선에서 여당 후보이던 이 대표는 대장동 수사 중 사망한 김씨를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피선거권이 달린 재판에서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날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김씨와의 인연을 부인하는 방식은 매우 거칠고 권위적이었다. 문제의 발언에 대해 “하위 직원이랑 놀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호주 출장 중 유동규, 김문기씨와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을 언급하며 ‘4~5시간 골프를 치다 보면 김씨가 과거 인연을 언급하며 자기를 소개했을 것 같다’고 하자 “직급으로 따지면 산하기관 간부도 아니고 실무 팀장 정도인데 시장에게 말 걸거나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심지어 ‘이 대표가 김씨가 운전하는 카트에 함께 탔다’는 유동규씨 증언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시장이 타는 차를 공사 본부장(유동규)이 운전 안 하고 자기 부하가 운전하게 하고 다녔다? 그럴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유동규 수행원을 시장이랑 타게 했다는 건 의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투표로 뽑은 시장의 지위가 이 정도로 제왕적이었나. 성남시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시의 시장을 지낸 한 인사는 “직원들이 의전하느라 불편할까 봐 아내를 시 행사에 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시장을 격의 없이 여겨야 시정이 돌아간다”고 했다. 자신을 낮추고 ‘충주맨’을 키워 시(市) 인구수보다 많은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모은 시장도 있다. 반면 이날 이 대표의 태도에서는 “샴푸 사러 청담동까지 심부름을 갔다” “휴일에도 도지사 밥을 챙기느라 직원들이 출근했다”는 공익 제보자 조명현씨의 폭로가 오버랩됐다.

이 대표의 유무죄는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다. 다만 그가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라며 주장했던 ‘머슴론’의 진정성에는 의문이 생겼다. 그에게 머슴은 ‘하급 실무자’ ‘하위 직원’ ‘부하’가 아닐까. 혹시라도 그가 사법리스크를 극복하고 대권을 쥐면 보게 될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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