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왼쪽)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한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베테랑2' 등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뉴스1

지난주 화제로 프로야구 1000만 관객 시대의 개막이 있다. 추석인지 하석인지 헷갈리는 34도 안팎의 폭염. 그런데도 관객들은 굳이 실외 야구장에서 함성을 질렀다. 반면 냉장고 같은 실내인데도 영화관은 곳곳에 빈자리다.

흥미로운 숫자가 있다. 주말 개봉관 티켓 가격은 1만5000원, 지난해 한국프로야구 경기당 객단가는 1만5226원. 왜 대중은 비슷한 가격인데도 쾌적한 실내를 외면했을까. 한 꺼풀 벗기면 더 민망한 수치가 있다. 공식적인 표 값 말고 영화 매출액을 관객 수로 나눈 올해 상반기 1인당 가격은 9698원. 한 사람 평균 1만원이 안 됐다는 의미다. 같은 영화라도 가격은 천차만별.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평일 롯데시네마 1인 관람권을 6000원에 팔겠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 아래에는 CGV여의도서 상영 중인 예술영화 ‘그녀에게’를 3500원에 양도하겠다는 고지도 있다. 두 장 사면 100원 더 할인해 6900원. 지금 영화는 마치 상설할인마트의 상품 같다. 통신사 VIP면 공짜로도 볼 수 있고, 카드 사용하면 20, 30% 할인은 기본이며, 1+1 티켓도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니 정가 지불하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 수밖에.

‘신과함께’ 1, 2편과 ‘광해’로 국내 최초 3000만 관객을 모은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이렇게 비유했다. 비슷한 가격의 평양냉면과 비교해 보자고.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에서 손님들은 누구나 같은 값을 낸다. 이재용 회장도 배우 최민식도 평범한 서민도 예외 없다. 냉면 값 비싸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있겠지만, 대접을 비울 때쯤이면 대부분 뿌듯한 얼굴이다. 오늘 가나 내일 가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균질한 슴슴한 맛.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탑건2′는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3만원 가까운 돈을 내더라도 환호하는 반면, ‘베테랑2′는 비슷한 주제의 OTT 드라마 ‘비질란테’보다도 못하다며 투덜댄다. 5000원 정도면 한 달 내내 영화·드라마·예능·다큐를 맘껏 볼 수 있는 OTT의 세상에서, 한국 영화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폭염에도 야구장이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한 비결은 결국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맥스보다 확 트인 개방감, 3만명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일체감, 치맥과 함께 춤추고 응원하는 축제의 현장감, 그리고 하향 평준화건 아니건 전력 평준화가 빚은 순위 경쟁의 긴장감.

유감이지만, 시대는 영화를 이미 한계 산업으로 대접하고 있다. 다음 주 수요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 란’은 넷플릭스 영화다. 영화제 끝나자마자 넷플릭스에서 추가 요금 없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제의 얼굴인 개막작으로 OTT 영화를 선정한 건 부산영화제 사상 처음. 영화제 측은 “넷플릭스 영화라고 제외하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작품 자체를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만 감안했다”고 했다지만, 내심 스스로도 민망했을 것이다. OTT 아닌 작품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더 뛰어난 작품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영화를 내세웠을 테니까.

결국 미래에는 두 종류의 영화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첫째, 영화관이라는 예외적 장소에서만 100% 즐길 수 있는 작품. 둘째, 영화관이란 폐쇄적인 곳에 가둬 놓지 않으면 평생 보지 않을 예술 작품.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와 OTT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 후자는 영화 덕후 감독들이 이미 성심 성의껏 만들고 있다. 결국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관건은 전자, 영화관에서만 보고 싶은 ‘웰메이드’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균질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