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김일성은 자신의 절대권력을 합리화할 이론이 필요했다. 인민이 혁명 주체라는 게 ‘주체 사상’인데, 김일성이 신성군주와 같은 권력을 가지려면 특별한 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혁명적 수령관’이다. ‘인민이 변혁 주체가 맞지만, 수령의 지도가 없으면 혁명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수령의 명령에는 오류가 없고, 오류를 찾으려는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수령 무오류론’도 그 중 하나다.

대학에 다니던 80년대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주체사상과 수령무오류론을 주입받았다. 선배가 생각을 묻기에 “박정희 독재가 문제라며, 김일성을 의심도 말라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선배가 화를 내며 “쁘띠부르조아적 사고(思考)”라고 했다. 쓰잘 데 없는 생각이란 뜻이다.

거의 40년이 흐른 지금,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그때 운동권 떠나기 잘했다. 둘째, ‘쿠팡’도 없던 시절 ‘혁명적 수령관’은 어떻게 그리 빨리 대학에 ‘총알 배송’ 됐을까. 셋째, 김일성은 갔어도 ‘수령이 옳다’는 생각은 죽지 않았다, 특히 이 대한민국 땅에서.

문재인 정부시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문 대통령. /임종석페이스북

당연히 임종석 전 의원 때문에 든 생각이다. ‘민족통일’을 평생 브랜드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통일을 포기하고 두 나라로 살자”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우리를 ‘남조선’ 대신 ‘한국’이라 칭하며 ‘북남통일론’을 폐기하고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왔다. 남조선 내 종북 활동이 성에 안차니, 북한 주민을 더욱 고립시켜 ‘독재 철옹성’을 쌓겠다는 속셈으로 분석된다. 임종석의 돌발 발언은 김정은 생각을 좀 순화한 말로 들린다.

1989년 방북 사건의 주인공이 임수경이었다면, 전대협 의장 임종석은 PD였고, 문규현 신부는 총괄PD쯤 됐다. ‘총제작자’는 아직도 모른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대외비 외교 문서를 공개하면서 관련 문서만 빼놨기 때문이다. 진보 인사들의 민감한 정보가 있어 그런 건가 추측을 낳았다.

지난 1989년 12월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이 임수경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검거돼 구속 수감되는 모습(사진 왼쪽), 오른쪽은 1989년 8월 북한 밀입북 후 돌아와 경찰에 연행된 임수경씨. /조선일보 DB

1996년 국회의원이 된 후 임종석이 주력한 건 ‘국보법 철폐’였다. “이 땅에는 오직 국가 보안이라는 허울을 쓴 정권유지법, 인권탄압법, 민족분열법이 있었을 뿐” “불법성과 야만성으로 가득한 반민주 악법”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어서는 ‘평화 쇼’ 주역이 됐고, 평생 사업으로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있다. 우리 방송사에서 ‘북한 영상 저작권료’를 거둬 북한에 보냈고, 김일성 전자도서관, 한국 지자체와 북한 도시를 결연하는 사업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통일바라기’의 통일론이 뭔지 모르겠다. 어떤 통일인지, 핵 보유국과의 통일은 어떤 건지 뚜렷한 ‘통일 철학’이 없다. 2008년 ‘현장기록 통일정책론:장산곶매 평화로 날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그가 이렇게 썼다. “남북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꿈을 잠재울 길이 없었고….” 그러니까 그 ‘꿈’이 정확히 뭐냔 말이다.

기자는 임종석을 ‘통일 일용직’으로 부르겠다. 머리 쓰는 분, 몸 쓰는 사람 따로 있다면 그가 후자에 속한다는 뜻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과거 암송한 ‘김일성 무오류론’ 정도일 것이다. 스스로도 민망했을 텐데, ‘평생 과업’을 단박에 뒤집은 결정적 동기는 대체 뭘까. ‘최종 업무 지시’라도 받았나.

여파는 크다. ‘보수는 반통일 세력’이라던 진보가 당황해 버렸다. 민주당은 ‘헌법 정신’을 거론하며 임종석을 바로 ‘손절(損切)’했다. 북한 정권의 심기를 경호하며 예산을 축내온 시민단체들은 이제 무슨 구호를 내놓을 건가. 김정은도 손절한 국내 ‘종북 세력’의 다음 호구책은 뭘까. ‘북한 내정 간섭 금지’ 운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