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노위 소속 민주당 등 야6당 의원들이 지난 8월 '노랑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화가 늦은 중국은 규모의 힘으로 시간적 제약을 돌파한 나라다. 14억명 거대 시장과 가공할 인재풀을 동력 삼아 기술 축적에 필요한 시간 조건을 압축해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유선 전화를 건너뛰고 무선 통신으로, 신용카드·내연차를 패스하고 곧바로 모바일 결제와 전기차 시대로 넘어간 나라가 중국이다. 지금 중국은 미래 산업과 기술 경쟁력에서 첨단을 달리는 혁신 국가다. 양(量)의 힘으로 질(質)의 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우리는 중국 하면 여전히 싸구려 짝퉁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중국은 인공지능에서 자율주행차, 배터리, 드론, 양자컴퓨팅, 우주항공까지 미래 패권이 걸린 첨단 산업에서 한국을 넘어 미국과 맞짱 뜰 수준이 됐다. 지난주 공개된 무역협회의 중국 보고서는 우리가 인정하기 싫던 사실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반도체 빼면 중국이 한국을 다 따라 잡았거나 추월했다”고 했고 “한국이 중국보다 경쟁력 있는 산업은 10%뿐”이라 진단했다. 보고서에 등장한 기업인들은 “두렵다”고 했다. 거대한 데다 혁신적이기까지 한 중국에 통째로 잡아먹힐 수 있다는 공포일 것이다.

중국식 혁신의 핵심은 시간을 압축하는 속도전이다. 인적·물적 자원을 24시간 365일 투입해 혁신 역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유연한 노동 시스템 때문이다. 스스로 ‘과로(過勞) 문화’라고 자조할 만큼 쉬지 않고 일한다는 일화가 중국 전역에서 쏟아지고 있다. ‘996′(아침 9시~밤 9시, 주 6일)은 흔하고 ‘007′(24시간, 주 7일) 근무까지 등장했다. 배터리 업체 CATL은 세계 1위를 질주하는데도 ‘896′(아침 8시~밤 9시, 주 6일) 계획을 세워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거대 중국이 밤낮 없이 영혼을 털어가며 총력전을 벌이는데 당할 재간이 없다.

중국의 강점은 곧 한국의 약점이다. 한국에선 정반대 일화가 넘쳐난다. 삼성전자의 서울 우면동 R&D캠퍼스나 기흥·화성의 연구개발실은 저녁만 되면 불 꺼지는 곳이 많다. 석·박사급 연구원도 오후 5시 정시 퇴근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일감이 몰려도 하던 일을 멈춰야 하고, 마감이 코앞인데 생산 라인을 세우는 일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발목 잡는 최대의 애로 요인으로 주 52시간 규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에도 법정 근로 시간은 있다. 하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노사 합의로 연장하거나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996′은 축복”이라 공개 발언하고,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 경영진이 “주말에 쉬길 기대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은 거꾸로다. 연구개발 경쟁에 쫓기고 주문 납기를 못 맞출 지경이 돼도 속수무책이다. 심지어 근로자가 원해도 더 일하면 불법이다. 일이 많을 때 더 일하고, 적을 때 더 쉬는 탄력적 집중 근무가 어렵게 되어 있다.

중국은 노동자가 주인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한국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노동 시스템이 유연한 것은 첫째, 중국에 ‘민노총’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에도 사업장마다 ‘공회(工會)’로 불리는 노조 조직이 있다. 하지만 공장을 점거하고, 물류를 마비시키고, 공사를 멈춰 세우는 조폭 같은 노조는 없다. 현대차가 강성 노조 반대로 28년째 생산 라인을 한 곳도 증설하지 못했듯, 기업 활동을 방해하고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민노총 같은 집단은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엔 ‘민주당’도 없다. 전 세계 유례없는 초강력 주 52시간제를 밀어붙인 것이 민주당의 문재인 정권이었다. 부작용이 속출했지만 입법권을 쥔 민주당은 산업계의 보완 호소를 묵살했다. 도리어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면 경영자를 감옥 보내는 중대재해처벌법, 노조가 불법을 저질러도 손해 배상을 면제해주는 ‘노란봉투법’ 등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한국에선 기업 대표이사에 오르는 순간 법규 2200여 개의 적용을 받는 잠재적 형사 처벌 대상자가 돼버린다. 이런 나라에서 혁신이 꽃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혁신의 숨통을 막는 입법 자해(自害)를 주도하는 것이 민주당이다. 문 정권 5년도 모자라 지금도 여전히 ‘반(反)기업이 노동자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산 중국엔 반기업적 정치 세력이 없다. 중국 공산당이이야말로 노동자의 계급 정당이지만 ‘자본이 노동을 착취한다’는 이념 도그마를 버린 지 오래다. 중국 공산당은 문제가 많지만 적어도 경제를 보는 관점만큼은 한국 민주당보다 스마트하고 선진적이다.

그 차이가 두 나라 간 혁신 스피드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민주당의 ‘기업 때려 노동 보호’ 폭주가 얼마나 심각한 국가적 해악을 끼치는지, 중국의 약진을 보면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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