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에 ‘분노의 축(軸)(Axis of Anger)’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일촉즉발 사태를 보도하면서 미국 및 그 동맹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을 그 축으로 언급한 것이다. 20여 년전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그 지원 국가로 지목하면서 처음 쓰인 악의 축(Axis of Evil)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戰) 사태를 겪으면서 쿠바, 리비아, 수단, 시리아로 늘어났다. 그리고 중동 사태를 계기로 이제 4나라로 압축된 것이다. 왜 하필이면 ‘분노’인지는 설명이 없지만 짐작건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한 적대감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불행한 일은 그 악의 축 시리즈에서 20여 년간 자리를 지킨 것이 북한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이 축의 4나라 중 3나라, 즉 북한, 중국, 러시아를 바로 머리 위에 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악의 축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세 나라가 모두 핵(核)무기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바다 건너 떨어져 있고 일본은 줄타기를 잘하고 있어 비(핵 무력)가 오면 제일 먼저 젖는 곳은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은 핵이 없고 가지려 해도 우방이 못 갖게 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 3국은 모두 공산 독재 체제의 나라다. 나라의 수장(首長)은 모두 몇 십 년에 걸친 장기 집권자다. 핵무기의 버튼(단추)을 자신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민주적, 절차적 과정 없이 언제든지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공산 독재국의 핵은 그만큼 위험하다. 우리는 그 위험의 현장을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의 사태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 조립 단계에 있다고 한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그 카드를 쥐고 있다. 미국은 자칫 중동의 화약고를 건드릴까 봐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추가 공격을 막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핵 제조 시설을 폭격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란에 핵 보유 능력이 없다면 이스라엘이 멈칫거릴 이유가 없을 것이고 이스라엘에 핵무기가 없다면(이스라엘의 핵 보유는 전 세계에서 공지되고 있다) 이란은 쉽게 이스라엘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핵이 오히려 견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더니 이제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핵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머지않아 핵실험을 또 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김정은은 북한이 체제적으로 변질되거나 붕괴되는 것을 수용할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낙관론자들은 북한이 자유 민주화 바람에 조만간 망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날이 바로 김정은이 남쪽을 향해 단말마적으로 핵을 사용하는 날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제는 북한이 망하는 것도 두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태평성대다. 미국과 전 세계 우방을 상대로 우리가 처한 핵 위험 사태를 주지시키고 핵 보유의 당위성을 알리려면 우선 우리 국민의 일편단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핵 매너리즘 또는 핵 불감증에 빠져있다. ‘북이 설마 동족을 향해 핵을 쓰겠어?’ ‘우리가 핵 가지면 오히려 북한의 핵 사용을 정당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등등. 우리의 안일함이 자칫 북을 교만하게 만들고 북핵의 핵 의존력을 키워주면 우리는 영원히 북핵의 종이 된다.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뿐이다. 공격용이 아니라 북핵 사용을 막는 억지용 핵을 말이다.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의 핵이지 미국의 핵이 아니다. 미국은 미국 본토가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자신의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는 경우에도 핵 보복을 한다는 명백한 보장을 한 적이 없다. 미국의 핵은 억지용 쪽에 무게가 있지 공격용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우리도 안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막강 공산 독재국가들과 최전선에 맞닿아 있는 한국의 특수 상황을 인정해 한국의 핵을 용인하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말이다.

지금 나라 안의 사정은 이런 심각한 문제를 논의하고 합일점을 찾기에는 너무 허망해 보인다. 집권 측은 스캔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반대 세력은 오로지 방탄과 재집권에만 혈안이다. 그리고 국민은 한국의 경제적, 물질적 성장에만 희희낙락한 분위기다. 부디 우리가 독자적으로라도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절박한 문제에 눈떠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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