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노벨상을 먼저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기자의 이런 실없는 소리에 아버지는 그냥 ‘허허허’ 웃고 말았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막 받고 난 뒤였다.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임방울 판소리 축제’ 뒤풀이 자리였다. 임방울 재단 김중채 이사장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라고 소개했다. 판소리 애호가 수준이 아니라 준(準)소리꾼 경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작가 한승원의 딸’일 것 같던 딸이 어느 날 자신을 ‘작가 한강의 아버지’로 만들어버린 사태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노벨상 수상 작품을 번역판이 아니라 원서(原書)로 읽게 됐다는 감회에 겹쳐 10여 년 전 이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가 한강은 나를 몇 번이나 무릎 꿇게 한 작가다. ‘소년이 온다’는 중간 부근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덮었다. 장편이라지만 중편(中篇) 두께 길이다. 문장도 유리처럼 맑고 투명했다.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다. 맑고 투명한 문장이라서 그 문장이 드리운 무거운 그림자에 더 숨이 막혔던 듯하다. 소설 무대가 나와 무연(無緣)한 곳이 아니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2차 시도도 실패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의 끝은 아직도 나에겐 미제(未濟) 상태다.

‘채식주의자’도 중도하차(中途下車)했다. 벌어진 상처의 아가리를 뚫어져라 응시(凝視)하는 작가의 눈길이 당해내기 버거웠다. 다음엔 초기 단편을 묶은 ‘여수의 사랑’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부터 정규 코스를 밟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책꽂이 어딘가 꽂혀 있을 것이다.

소설이 쓰인 원어(原語)로 읽는 독자가 벅찰 정도라면 이 소설을 영어·불어로 옮긴 번역가의 수고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68년 일본 작가로선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공교롭게 메이지(明治)유신 백년이 되는 해라서 일본 전체가 들썩거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향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설국(雪國)’의 작가다.

그해 12월 스톡홀름 수상식 연설에서 가와바타는 동행한 영어 번역가 사이덴스티커를 가리키며 ‘내 소설 절반은 사이덴스티커가 쓴 거나 마찬가지’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가와바타는 지금도 ‘일본 소설가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을 썼던 작가’로 평가받는다. 번역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사이덴스티커의 말은 달랐다. “뜻이 분명하고 조리 있는 문장은 흥미가 당기지 않아요. ‘작가님, 이 문장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야 할 곳이 많은 글에 끌립니다”. 한강의 번역가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복(福)이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정리되지 않는다. 작가를 기다려야 한다. 어느 역사가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侵攻)은 무엇을 남겼는가’라고 스스로 묻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내놨다’고 답했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에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의 ‘휴가병열차’ ‘양철북’을 남겼고, 피로 범벅된 발칸의 역사 속에서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가 태어났다. 그런 뜻에서 6·25는 지금도 종결을 기다리는 전쟁이다. ‘5·18′ ’4·3′을 피해자가 섰던 자리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건 하늘을 더 높이 나는 새의 눈을 가진 또 다른 작가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걱정도 태산이랄지 모르지만 작가 나이가 걱정된다. 노벨상은 다른 상보다 무겁다. 기쁨이 지나면 중압감(重壓感)이 내리누른다. 일흔이나 여든에 받는 게 무난하다. 가와바타는 노벨상 이후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썼을 뿐이다. 펜의 무게를 더 느꼈던 듯하다고 했다. 한 해 걸러 작품을 내놓다 1957년 43살 한창 나이에 수상한 알베르 카뮈도 수상 이후 유작(遺作) ‘최후의 인간’이란 미완성 작품을 매만지다 세상을 떴다. 한강 작가가 무거운 상을 가볍게 받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젠 역사 현장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한강은 수상 소감으로 ‘Thanks, thanks, thanks’ 하고 문학의 새 영토를 개척해 온 선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맞춤한 답변이다. 한강 덕분에 이제 선배 작가들도 노벨상 발표 때가 닥치면 전화통을 떠나지 못하던 옹색스러운 처지를 벗게 됐다. 1968년 가와바타 수상 다음 일본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26년이 걸렸고 2012년 모옌(莫言) 수상 이후 중국 수상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상(賞)에 곁눈질 않고 쓴 작품이 상을 물고 돌아오는 법이니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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