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주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 관련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김건희 여사는 명태균씨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 주세요”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오빠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지가 뭘 안다고”라고 썼다. 대통령실은 ‘철없는 오빠’는 대통령이 아니고 여사의 친오빠라고 했다.

솔직히 이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후 맥락상 두 사람의 정무적 판단이 맞선 것 같은데, 명씨처럼 거물 행세하는 사람이 정치 경험이 없는 친오빠와 논쟁을 벌였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말을 믿는 셈 치고 싶다. 그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사는 카톡에서 “명 선생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상황” “명 선생님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장담합니다”라고 썼다. 명씨에 대한 최상급 평가이자 전적인 신뢰 표시다. 이 문자는 2021년 7월 말 무렵에 쓴 것이다.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국민의 힘에 입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입당한다면 언제냐를 놓고 고민했다. 그 언저리 기사 데이터 베이스를 뒤져봐도 ‘윤석열 캠프’가 클린 히트를 날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명씨가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전했길래 여사가 그 식견에 감탄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명씨는 이준석 대표가 휴가로 당사를 비운 날 입당하라고 권했다고 했다. 자신이 윤 대통령 부부 귀를 잡고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당대표 패싱 입당’은 윤 전 총장의 ‘통 큰 사나이’ 이미지에 흠집을 낸 옹졸하고 해괴한 선택이었다.

명씨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도사 같은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대통령 부부를 “앉혀 놓고” “다 잡혀간다(감옥 간다)”고 겁까지 주며 훈계했다고 했다. 윤석열 정권이 자신에게 “공직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 같냐”면서 제안한 주체는 “결정권자”라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자리를 마련해 모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취지다. 제갈공명 수준의 공훈을 세운 듯한 공치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나를 담을 그릇이 못 돼서” 거절했다고 했다. 정치권을 30년 가까이 취재해 오면서 현역 대통령을 상대로 이렇게 방자한 언동을 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명씨는 서울 서초동 대통령 부부 사저를 들락거린 횟수를 기억 못 한다면서 “대여섯 번이면 가봤다고 얘기할 수 있냐”고 했다. 대선을 전후한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 수시로 맞아들였을 정도로 명씨를 평가했다는 뜻이다. “공을 많이 세우셨으니 대통령 부부와 맺은 친분을 밝혀도 된다”는 말을 대통령실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용산은 이렇다 할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김 여사 카톡을 보니 명씨가 믿는 구석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명씨 같은 ‘훈수꾼’들이 정치판을 어지럽히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선거 때마다 떴다방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이들은 선거 향방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양 떠벌린다. 대선 승부를 가른 ‘신의 한 수’에 대해 “내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열 명가량씩 나온다. 명씨는 그중에서도 체급이나 내공이 밑바닥 수준으로 보인다. 진짜 고수들은 명씨처럼 경박하게 입을 놀리지 않는다. 세상사 이치에 눈이 트인 사람이라면 명씨 같은 부류에게 놀아나지도 않는다.

여사가 정체도 불투명한 인사들과 엮이면서 문제를 일으켜 정권에 부담을 주고, 국민을 놀라게 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매체 기자와 6개월에 걸쳐 50차례 통화 녹취록을 남겼는가 하면, 북한에 들락거리는 정체불명 목사에게 디올 백을 건네받았고, 이번엔 과대망상 정치 브로커를 받들어 모시는 카톡 메시지가 나왔다. 하나같이 대통령실 근처에 접근시켜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여사가 이런 인물들을 높이 평가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뒤탈이 날 물증까지 남겼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래놓고 ‘오빠’의 철없음과 무식을 개탄한 대목은 역설적이다. 여사가 난사해 놓은 문자와 녹취록이 산재해 있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다음엔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까 겁이 난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여사의 이런 처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대통령실이 2류, 3류들에게 농락당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여사가 안쓰럽고, 문제 삼는 이들을 탓하고 있나. 국민에겐 조금도 미안한 마음이 안 드나.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