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맨주당 대표가 지난 9월 30일 위증 교사 사건의 1심 결심 공판을 위해 서울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대표가 받고 있는 4개 재판중 위증교사와 선거법 위반 사건의 1심 선고가 다음달 중 나올 예정이다. /전기병 기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김건희 여사 측 해명 중, 복잡한 법리 빼고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이 두 가지다. 첫째, 김 여사처럼 주범에게 계좌를 빌려준 손모씨가 1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둘째, 문재인 정권 검찰이 그토록 탈탈 털었어도 혐의점을 못 찾아 기소하지 못했다. 이 중 첫째는 전주(錢主) 손씨의 판결이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무너졌다. 둘째 역시 정권이 바뀐 뒤에도 검찰이 결론을 못 내리고 계속 끄는 바람에 근거가 약해졌다. 수사팀이 무혐의를 자신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문점은 계속 커지는 상황이었다. 주가조작범 재판에서 수사 기록이 공개되고, 통화 내용과 편지 등이 유출되면서 김 여사에게 불리한 정황이 잇따랐다. 그런 와중에 검찰총장이 바뀌자 4년 6개월을 끌던 사건이 ‘불기소’로 결론 났다. 검찰은 순수하게 법리만 따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거면 왜 이제껏 사건을 들고 있었냐는 반론이 나온다. 수사 결과 발표일을 재·보선 다음 날로 잡은 것부터 개운치 않았다.

검찰의 결정에 김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 못지않게 반색했을 사람이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자신의 범죄 혐의를 ‘물타기’할 카드를 또 하나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무혐의 처리가 법리적으로 옳은지 여부를 떠나 무언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부터가 이 대표에겐 호재다. 그는 자신의 모든 혐의가 “정치 검찰의 창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여 오는 사법 공포에 시달리는 이 대표에게 검찰이 핑곗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이 대표가 다음 달 나올 1심 선고에 떨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겉으론 무죄를 자신한다지만 법원의 판결 트렌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올 들어 나온 1심 선고에서 선거법 위반 사건의 63%가 벌금형 이상, 위증·증거인멸 사건의 56%가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중 허위 사실을 반복 언급했고, 위증 교사는 확실한 증언에다 녹취록까지 있어 더욱 불리하다. 만약 선거법 사건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 위증 사건에서 징역형이 확정된다면 그는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겁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 대표가 재판 아닌 ‘정치’로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판으론 불리할 것 같자 재판정 밖에서 싸우겠다며 거대 야당을 개인 범죄 방어에 동원하고, 국회 상임위를 방탄 무대로 만들었다. 이 대표 1인 정당이 된 민주당은 검사들을 무더기 탄핵 소추하는가 하면, 재판부를 향해 “국민적 저항” 운운하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며 사실상 윤 정권 퇴진 운동에도 돌입했다. 온갖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사법적 허들을 피하려는 정치적 술수다. 대선까지 2년 반을 기다릴 수 없으니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 조기 선거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대표의 전략은 먹혀들고 있다. 민주당을 ‘개인 로펌’으로 전락시켰는데도 당내에선 비판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의회 시스템을 범죄 방탄의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도 여전히 지지율은 높고 선거만 하면 이긴다. 법원마저 정치 압박에 주눅 든 기색이 엿보인다. 이 대표 선거법 사건의 판사는 1년 6개월간 재판을 끌다가 돌연 사표를 냈고, 구속적부심 담당 판사는 “혐의가 소명된다”면서도 ‘정당 대표’라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장동·백현동·대북송금 사건은 고사하고 선거법·위증교사 사건마저 대선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사법 방해는 헌정(憲政) 유린의 중범죄다. 정상적 국가라면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세력은 여론 질타를 받고 당장 퇴출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대권 레이스 선두를 질주하고, 민주당은 건재하다. 법치를 파괴하려는 사법 방해 세력이 도리어 큰소리치며 정국을 주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한국적 현상이다. 개인 범죄를 야당 탄압으로 둔갑시키는 후흑(厚黑)의 테크닉이 놀라울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이 대표를 도와주는 것이 윤 정권이다. 주가조작과 명품 백 사건을 무혐의 처리함으로써 공정성 시비를 자초하고 ‘정치 검찰’ 프레임에 명분을 주었다. 국정 개입, 비선 의혹이며, 정치 브로커와 맺은 수상한 관계 등이 끊임없이 불거지는데도 김 여사 문제를 단속하지 않고 방치해 공격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쯤 정치판을 휩쓸었어야 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이슈를 정권 심판론이 가려준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쏟아내는 자책골을 이 대표와 민주당이 먹고 산다. 윤 정권이 단단했다면 방탄도, 사법 방해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종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한동훈 대표와 격차를 더블 스코어로 벌렸다. 이대로 선거를 치른다면 뻔한 승부가 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를 패배시켰던 윤 대통령이 이젠 ‘이재명 대통령’의 길을 깔아주고 있다.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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