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 엘링 홀란이 자신의 소속팀이 있는 영국 맨체스터 부촌에 주택을 구입한다는 게 화제가 됐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방 6개에 수영장, 체육관, 오락실, 사우나가 딸린 으리으리한 저택이다. 그런데 가격이 고작(?) 350만파운드(약 60억원)로 지난 8월 거래된 한강변의 국민평형(84㎡) 아파트 한 채 값과 같다. 연봉 350억원을 받는 홀란의 부동산 씀씀이가 소박한 것인지, 기자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헷갈린다. 덩달아 강남구·서초구 아파트 평균 가격은 26억원을 넘어 평(3.3㎡)당 1억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을 가늠해 보는 PIR(Price to Income Ratio) 지수가 있다. 국가·도시 비교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서울의 PIR은 무려 27.5배다. 서울의 중간 소득 가구가 27.5년간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파리(17.3배), 런던(15.8배), 뉴욕(13.7배) 등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한참 높은 국가 도시들을 크게 앞선다. 실제로 뉴욕의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맨해튼 고급 주택가의 럭셔리한 아파트가 같은 평수의 강남 아파트보다 싸게 나온다.
서울 집값이 ‘넘사벽’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젊은 세대의 불만과 아우성도 커진다. 그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카드가 강남 대체 신도시 개발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세곡·내곡 지구 등 서울 인근 그린벨트를 허물고 주변 시세의 70~80% 가격에 새 아파트를 공급한 이명박 정부 외에는 낙제점 수준이다. 이번 정부도 3기 신도시에 의욕을 보였지만 벌써 당초 일정보다 2년 이상 밀렸다. 공급량이 가장 많은 광명지구의 경우 2026년부터 토지보상에 들어가 2033년에야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동탄·김포 등 2기 신도시들은 입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교통지옥에 시달린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경로 우대 받을 때쯤 지하철 타보겠네”라는 냉소가 나온다. 동탄에 사는 한 회사원은 “서울에 왔다가 귀가할 때 광역버스를 타려고 긴 줄을 서다보면 내가 ‘2급지 시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부동산 양극화는 선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선·총선·교육감 선거 할 것 없이 부동산 계급론이 지배한다. 한 일간지가 지난 22대 총선에서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과 국민의힘·민주당의 득표율 차이의 상관 관계를 분석해보니 상관계수가 0.76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난 대선(0.74)보다 더 높아졌는데, 숫자가 1에 가까울수록 강한 상관관계를 뜻한다. 다시 말해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국민의힘에, 반대로 낮을수록 민주당에 투표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에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25개 자치구별 득표율을 보수 후보가 많은 표를 얻은 순서대로 줄을 세워 보면 강남·서초·송파·용산·성동으로 이어지는 자치구별 아파트 가격 랭킹을 보는 것 같다.
일본이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였던 ‘잃어버린 30년’은 기업·개인이 경쟁적으로 돈을 빌려서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던 빚투에서 시작됐다. 이 시기에 나타난 부작용이 급격한 집값 상승을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의 혼인·출산율 하락과 고령화, 그리고 노동의욕 저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가와 집값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일할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다.
과연 한국은 어떤 길을 갈까? 전문가들은 극심한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울 쏠림을 가속화하는 민간 재건축·재개발만 쳐다볼 게 아니라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가시티 조성으로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도권 일대에서는 대대적인 교통 인프라 확충에 나서라는 것이다. 다 죽어가는 내수 경기를 살리는 데에도 선심성 현금 살포보다 그 편이 훨씬 낫다. 정부가 경리과장처럼 예산·지출 수지 맞추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정치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정당화하는 좌파 포퓰리즘이 날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