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주간

“폭증하는 연금 부채가 한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 간다. 2050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이다.” 얼마 전 날아 든 IMF의 경고다. 보건복지부는 “하루 885억원씩 연금 부채가 늘어난다”고 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했던 “매일 800억원씩 증가”보다 85억원 불어난 액수다.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 그대로 가면 2056년에 기금이 모두 소진된다. 2057년부터는 연금 가입자가 소득의 28%(보험료)를 내야 한다. 2075년이 되면 36%로 부담이 더 커진다. 현재 내는 돈 9%의 무려 4배다. 은퇴 후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지금과 똑같이 40%인데도 그렇다.

왜 이런 불공평한 일이 벌어지나. 연금이 처음 도입될 때 가입 독려를 위해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1988년 연금 출범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 같은 86세대들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게 된다. 받는 돈이 낸 돈의 두 배라고 한다. 먼저 받는 사람들이 자기 몫 이상 챙기니 나중 받을 사람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30년 후 기금이 바닥나면 그때부터 연금 가입 대상인 손자 세대들은 “안 내고 안 받겠다”며 거부할 것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그때까지 연금을 붓고 은퇴하려는 자식 세대들은 “내가 낸 몫을 달라”고 아우성치게 된다. 그때까지 비교적 풍족한 연금을 받아 쓴 86 세대들은 빚더미에 파묻혀 내전을 벌이는 후손들로부터 “뻔뻔한 할배들”이라는 원망을 듣게 될지 모른다. 그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말이다.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출발한 원죄 때문에 발생하는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미래의 재앙을 막으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뉴스1

국민연금은 1988년 출범 후 1998년과 2007년, 대략 10년 간격으로 두 차례 개혁을 했다. 2018년에도 담당 부처가 세 번째 개혁안을 마련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다. 자신의 지지율에 부담이 될까 봐 미래 세대가 맞게 될 고통을 외면했다. 문 대통령 특유의 무책임한 행태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정부는 앞장섰지만 좌절된 경우도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내는 돈’ 9%를 12.9%로 올리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제1, 제2 야당이 반대 및 기권표를 던져서 1표 차로 부결시켰다. 그래서 ‘받는 돈’만 60%에서 40%로 낮추는 후속 방안이 통과됐다. 당초 안이 통과됐다면 현재 연금 상황은 훨씬 개선됐을 것이다.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집권층과 야당이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그런 여건이 마련돼 있다.

윤석열 정부는 ‘내는 돈’ 13%, ‘받는 돈’ 42%를 기본 뼈대로 하고 인구 변동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 조정하는 장치를 추가한 개혁안을 발표해 놓은 상태다. 도망칠 대안 없이 단일안만 내놨는데 용기 있는 태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5월 21대 국회 막판에 ‘내는 돈’ 13%, ‘받는 돈’ 44%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야당이 자발적으로 연금 개혁을 제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재명 저격수’로 알려진 윤희숙 전 의원조차 “이 대표가 갑자기 대통령다워 보인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국민연금 ‘내는 돈’ 9%는 98년 이후 26년 동안 한 번도 올리지 못했다. 국민 반발이 두려워서다. 그런데 여야가 똑같이 13% 인상을 제시했으니 이것만으로 90%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통과시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나머지 부분 절충은 곁가지다. 윤 정부 개혁안이 미래 적자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지만 타협이 어렵다면 져주는 척 야당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낫다. 하루라도 먼저 처리해서 885억원씩 늘어나는 부채 시한폭탄을 멈춰 세우는 것이 최선의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4대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고 했다지만 현재의 허약한 지지 기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연금 개혁밖에 없다. 그것마저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 대표 역시 연금 개혁에 보조를 맞춘다면 “저런 책임감이 있었느냐”고 눈을 비비고 이 대표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연금을 이대로 놔두면 86세대들만 혜택을 누리고 그 대가를 후손들이 치르게 된다. 86세대 대표격인 여야의 두 지도자가 손잡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자해지’ 원칙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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