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반환점을 돈다.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19%로 나왔다. 이런 추세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근원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핵심 가치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과거 했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말에는, 듣는 이를 격동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문재인 정권에 등을 돌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말은 부메랑이 돼 윤 대통령을 향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대등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상하(上下) 관계는 아니다. 검찰총장이 법무 장관의 부하가 아니듯,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부하는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 뜻에 따라 당대표가 갈리는 일이 반복됐다. 총선이 코앞인데 당대표 역할을 하는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나가라고 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공직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자의적 지배를 거부하고 법과 제도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의 행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격노(激怒)’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등장한 정부는 없었다. 인사(人事)도 대통령에 대한 충성, 대통령과의 친소(親疏)가 기준이 되다 보니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인사는 대통령이 발신하는 중요한 메시지인데, 할 때마다 ‘검찰 라인’ ‘김건희 여사 라인’이라는 뒷말로 덮였다. 입바른 보고를 했다가 윤 대통령에게 “당신은 누굴 위해 일하는 거냐”라는 식의 말을 들은 용산의 참모들은 단명했다.
지난 2021년 윤 대통령이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 실무진을 포함해 능력 있고 촉(觸)이 좋은 자원들이 윤 대통령 쪽으로 집결했다. 이제 그들 대부분이 흩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내각의 경우, 총리만 뛰고 장관은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이른바 친윤(親尹)들도 ‘대통령 탄핵은 막아야 한다’는 수세적 목표만 공유한 상태에서 무기력에 빠져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에서 밀려난 이들은 침묵하는 것으로 윤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고 있다. 윤 대통령을 지원했던 원로(元老)들은 어느 순간부터 고언(苦言)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명태균 파문’에 대한 대응, 하나만 봐도 지금의 대통령실로는 격랑을 헤쳐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여권의 한 인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책봉한 공신 중에는 전장에서 싸웠던 장수보다 임금의 피란길을 따라갔던 수행원이 더 많이 포함됐다”면서 “윤 대통령 임기 중반을 맞는 지금 용산이 딱 그렇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명태균 이슈가 계속 굴러가는데도 손 놓고 있다가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 파일을 공개한 야당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특별감찰관 추천이나 ‘김건희 여사 문제 사과’로 수습을 모색할 국면도 이미 지나 버렸다. 여권 내부에서 전면 쇄신 요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돌을 맞아도 갈 길을 가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도 현실을 직시하고 내각과 대통령실 개편 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을 하든 대통령 본인의 고통이 수반된 ‘공정과 상식의 복원’이라는 코드가 들어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