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국문출판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외교 활동 장면을 모은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를 12일 공개했다. 화보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 당시 소식을 전한 싱가포르 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 지면도 함께 실었다. /북한 외국문출판사

미국 대통령들은 보통 첫 임기 4년의 절반쯤이 지났을 때 재선 캠페인에 시동을 건다. 트럼프는 달랐다. 첫 번째 대선을 치른 지 보름 만에 4년 후를 위한 선거 비용을 처음 지출했다. 2017년 1월 20일 취임식 당일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재선 캠페인 등록 서류를 제출했다. 임기 시작 열흘가량이 지난 2017년 2월부터 재선을 위한 첫 유세를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성적이 매겨지는 시험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안달하고 조바심 낸다. 주변에서 어떤 눈으로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트럼프에게 다음 대선은 없다. 4년 단임을 새로 시작하는 트럼프는 한편으로는 조기 레임덕, 또 한편으로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겠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트럼프에게는 “내 취임식이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식의 구체적인 물증이 필요하다. 그 같은 인정 욕구를 만족시켜 줄 보증 수표는 노벨 평화상이다.

여태까지 노벨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 우드로 윌슨(1919), 지미 카터(2002), 버락 오바마(2009)까지 모두 네 명이다. 트럼프도 받는다면 다섯 번째 손가락에 꼽힌다. 대략 50명 가까운 역대 대통령 중 상위 10%에 속한다는 최우등 상장을 손에 쥔다. 트럼프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노벨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트럼프는 아베 일본 총리와 한 통화에서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기자들에게 “아베 총리가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면서 일본이 보낸 추천서 사본 5장을 함께 공개했다. 자신의 청탁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노벨상 위원회가 공정하다면 나에게 상을 줘야 한다”면서 “아무 업적도 없는 오바마에게 준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가짜 언론 매체들이 내가 노벨상 후보로 선정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증은 열병(infatuation) 단계”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2기에선들 그 지병이 어디로 가겠는가. 트럼프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내에 종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총리에게 “미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이전에 전쟁을 끝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밟아둔 것이다. 트럼프가 탁월한 중재 능력을 발휘해 ‘2개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이룩한다면 노벨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인정받는다.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이 트럼프 뜻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경우 트럼프는 ‘북핵 폐기 눈속임 쇼’라는 조커 카드를 꺼내들지 모른다. 트럼프가 지난 8월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절대적인 지도자다. 나는 그와 아주 잘 지냈다”고 한 것은 밑밥 깔아 두기였다.

대한민국 안보가 트럼프의 노벨상 평가 점수를 채워주는 제물로 바쳐져서는 안 될 일이다.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라인이 강경파로 꾸려지고, 북·러 군사 밀착 국면인데 트럼프가 설마 그러겠냐고 방심하면 안 된다. 1기 때도 참모진은 안보 전문가들이었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 단추 협박을 주고받던 와중에 싱가포르 탱고 쇼가 성사됐다.

전문가들은 두 방향에서 대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반드시 자기 몫을 챙긴다. 어차피 줘야 한다면 ‘죽고 사는 문제’는 지키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무기 구입에서 적정한 액수와 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 낫다. 북핵을 인정하는 거래는 결코 평화에 기여하지 못하며, 그래서 노벨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일도 긴요하다. 우리와 안보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우리보다 강한 대미 설득력을 갖춘 일본과 공조 체제를 다져야 한다. 싱가포르, 하노이 미·북 회담 때 트럼프 귀를 붙잡고 최악의 선택을 막는 역할을 한 것도 아베 일본 총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군 일본과의 협력 분위기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걱정거리는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고 우리는 평화를 챙기면 된다”며 북핵 사기극에 장단을 맞췄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적 자해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던 노력이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한 최근 발언이 못내 찜찜하다.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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