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가 다가왔을 때 각자 예상하는 선고 형량을 주고받았다. 의원직 상실 기준인 벌금형 100만원을 전후해서 양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필자는 100만원을 살짝 넘기는 액수를 떠올렸다. 2심에서 100만원 안쪽으로 조정할 여지를 떠넘기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삼십 분이 흘렀을 무렵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징역형이 나왔네. 1년에 집행유예 2년.” “되게 센데.”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열흘 후 다시 오후 2시. 이번엔 그다지 결과를 궁금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증 교사는 비교적 증거가 뚜렷했다. 지난해 이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도 “위증 교사는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당도 위증 교사 쪽을 걱정해 왔다. 선거법에서 엄중한 판결이 나왔으니 징역형은 피하기 어렵고 집행유예가 따라붙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고 짐작했다. 이번에도 놀라는 탄성이 터졌다. “위증은 유죄인데, 위증 교사는 무죄? 이렇게 될 수 있나?” “증언한 사람만 바보 만들었군.”
희한한 체험이었다. 국민적 관심사인데 현장을 볼 수 없었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경기를 위성중계로 볼 수 없던 까마득한 시절, 뉴스 멘트로 최종 스코어만 접하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스포츠는 대충 짐작했던 결과가 나오는데 판결은 지그재그로 예상을 비켜갔다. 두 판결을 지켜본 누군가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했다.
제1 야당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를 판사 한 명이 결정해서 발표했다. 국민은 그걸 귀동냥해서 전해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30년 가까이 정치판을 관찰해 오면서 처음 보는 일이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유무죄를 가리기 앞서 기소만 돼도 일단 자리를 내려 놓곤 했다. 그걸 국민에 대한 예의로 여겼다. 대통령 하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은 검사의 수사선상에 오를 일을 하지도 않았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정치에서 염치는 실종됐다. 제1 야당 대표는 재판정 네 곳을 들락거리며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 2심까지 실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정치인이 총선 바람을 일으키며 제2 야당을 건설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민주당은 용궁에서 간을 털리는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망했다”고 성토했던 입으로 열흘 만에 “판사님, 감사합니다”를 읊조렸다. 야당 정도 강도는 아니지만 여당도 반대 방향의 감정 기복을 겪었다. 로또 다섯 자리 번호까지 맞아서 대박 김치국부터 마셨는데 마지막 순간 삐끗했다.
노력 없이 얻는 횡재는 안 좋은 결말을 예고하는 법이다. 정치도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문재인 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으로 갈라지자 “어부지리로 180석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방심하며 각종 추태를 선보였다. 그 결과 질 수 없는 선거를 내주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끝내 탄핵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권 사람들은 출범 초부터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조커를 손에 쥐고 있다며 여유를 부렸다. “수많은 혐의 중 몇 가지는 유죄를 피할 수 없다. 확정 판결이 늦춰질수록 오히려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만 쓰러뜨리면 민주당은 무력화된다, 언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판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윤 정권이 방만한 국정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데는 이런 계산법도 한몫했다고 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권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면서 엄청난 위기감에 휩싸였다. 국민 눈높이에는 못 미쳤지만 대통령은 대(對)국민 사과의 모양새를 취했고, 여당은 대통령에게 쇄신을 실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1심 징역형이 나오면서 여권의 절박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위증 교사 선고는 여권 입장에서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권 희망대로 이재명 대표의 두 혐의 모두 중형이 선고됐다면 여론은 “저쪽은 철저하게 심판받는데 왜 대통령 부인은 수사조차 안 받느냐”는 쪽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용산도 여당도 서초동에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를 접고 이달 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쇄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왕적 권력을 손에 쥔 집권 세력이 스스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서 상대방이 거꾸러지는 것만 기다린다면 그것만큼 한심스러운 일이 없다. “그래도 여(與)가 야(野)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면 서초동에서 감이 저절로 굴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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