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당원 게시판’ 내분(內紛) 속에서 ‘김옥균 프로젝트’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단어가 처음 회자한 것은 지난 7월 국민의힘 대표 경선 때였다. 속칭 ‘지라시’가 돌았는데 한동훈이 당대표가 되더라도 김옥균의 삼일천하(三日天下)처럼 오래 못 가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출처로 친윤계가 지목됐다. 한동훈을 정권 운용의 위험 요소로 보는 용산과 친윤들의 속내가 그대로 담겼다는 말이 나왔다.

‘당원 게시판 논란’은 한동훈 대표 가족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 글들을 당원 게시판에 올렸다는 것이다. 친한계는 무시하고 가려 했지만 친윤계는 “가족이 쓴 게 맞느냐”고 추궁했다. 한동훈 대표와 친윤계 최고위원이 공개 설전을 벌인 뒤, 한 대표가 “당대표 끌어내리기 시도”라고 하면서 친한계들이 ‘김옥균 프로젝트’를 입에 올렸다. 여권은 “헤게모니 전쟁이 시작됐다”고 술렁였다.

친한계가 헤게모니 싸움을 주도할 정도로 세(勢)를 형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를 생각하면 한참 못 미친다. 한 대표 지지율은 저조하고 윤 대통령 임기도 아직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친한계는 의원이 20명 정도라서 야당의 특검·탄핵 공세(攻勢)를 방어하는 데 키(key)를 쥔 존재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임 중 2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28일 재표결에 부칠 예정이었는데 내달 10일로 늦췄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8명만 이탈해도 특검법안은 통과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균열을 기대하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가 ‘전원 무효표 만들기’를 고민하겠는가. 108명이 재표결에 참여하되 아무도 기표소에 들어가지 않고 받은 투표용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는 식의 표 단속을 말한다.

주변의 일반 국민을 보면 ‘당원 게시판’ 논란에 별 관심이 없다. 야당에서 “집권 여당이 참 한가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여당이 3주나 이 문제에 붙잡혀 있는 배경에는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정치적·감정적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친윤계는 ‘김건희 특검법’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저지하는 전선(戰線)도 뚫린다고 본다. 반면에 친한계는 김 여사 문제와 윤 대통령을 분리하고, ‘김 여사 리스크’를 줄여 윤 대통령을 방어할 동력을 확보하자는 생각이다. 이런 인식의 격차에 윤 대통령 부부가 한 대표에게 느끼는 감정적 문제도 깊이 개입돼 있다.

가족이 비방 게시 글을 쓴 것으로 드러난다면 한 대표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윤 대통령 사과 이후 기대됐던 ‘속도감 있는 쇄신’은 계파 싸움 속에 묻혀 버렸다. 윤 대통령이 약속했던 특별감찰관 추천도 하세월이다.

국민의힘은 ‘명태균 의혹’으로 어제까지 연이틀 당사(黨舍) 압수 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명씨의 공천 개입,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다. 선거법 사건에 이어 위증 교사 사건도 1심 유죄를 받을 걸로 예상됐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민주당은 국감 위증을 이유로 감사원장 탄핵 절차에 들어갔고 여론조사 조작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버렸다.

지금의 여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났던 고질적 병증(病症)을 그대로 보여준다. 숨 돌릴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권력 투쟁 벌이는 증세는 이제 불치병이 돼 버렸다. 더 문제는 자각도 못할뿐더러 상황을 낙관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