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받고도 당당한 데는 나름의 방어 논리가 있다. 큰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는 공정 선거를 흔드는 반(反)민주적 범죄지만 일반 국민이 보기에 죄질이 약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대표 측은 “말 좀 잘못했다고 야당 대표를 죽이냐”며 ‘탄압’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검찰이 먼지떨이 식으로 사소한 혐의까지 탈탈 털었다고 주장한다.
1승 1패를 기록한 선거법 위반과 위증 교사는 이 대표의 12개 혐의 중 가장 가벼운 것들이다. 죄질이 무거운 핵심 사건은 언제 결론 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 대장동·백현동·위례 비리나 대북 송금 뇌물, 법인카드 횡령 같은 것들이 국민의 ‘분노 게이지’가 높은 진짜 혐의인데, 이 재판들은 아직도 첩첩산중을 헤매고 있다. 자칫 대선 때까지 선고가 내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연 전술을 펼치는 이 대표에게는 다행이겠으나 유권자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대한 판단 근거를 갖지 못한 채 투표장에 나가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 자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주변 인물에 대한 재판을 통해 몇 가지 힌트를 주었다. 관련 판결문들에 제시된 조각 정보를 조합하면 사법부가 이 대표의 혐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림을 짜맞출 수 있다.
첫째, 법인카드 유용이다. 이 대표는 경기 지사 시절 법카로 음식을 구입하는 등 경기도 예산 1억원을 개인 용도에 쓴 혐의로 기소됐다. 쟁점은 사적 유용이 있었느냐와 이 대표가 지시·관여했느냐 두 가지다. 이 중 유용 부분은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수행비서 배모씨가 별도 재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음으로써 사실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배씨가 ‘상하 관계’에 있던 김혜경씨에게 “여러 차례 초밥·과일·식재료 등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도 예산이 이 대표 부부 생활비로 쓰였다는 뜻이다.
김혜경씨의 관여 사실도 인정됐다. 김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김씨와 배씨의 공범 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묵인·용인” 아래 배씨의 법카 사용이 이뤄졌고, 김씨도 이를 “인식했다”고 보았다. 김씨가 법카 유용의 공범이라면 이 대표 역시 공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경기 지사 신분이던 이 대표야말로 배씨의 상급자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혜경씨 1심 판결이 이 대표에 대한 유죄 선고와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백현동 비리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자신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김인섭씨 청탁에 따라 민간 업자에게 사업권을 주고 부지 용도를 4단계 상향하는 등의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청탁이 성공했음은 로비스트 김씨가 징역 5년형 확정 판결을 받음으로써 사실로 인정됐다. 김씨의 재판부는 “피고인(김인섭)은 이재명·정진상 등 성남시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인허가 사항을 알선해” 74억원 이상 이익을 얻었다고 판시했다.
이 대표는 용도 변경이 “국토부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책임을 피하려 했다.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주 전 선거법 사건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 대표가 스스로 검토해 용도 변경을 했다”고 판단했다. 두 개의 판결을 결합하면 용도 상향 특혜는 이 대표 본인 결정에 따른 것이고, 그 결과 백현동 로비가 성공했다는 구조가 된다. 형법상 배임 요건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셋째, 대북 송금 사건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방북 비용 등을 쌍방울에 대신 지급하게 했다는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 기본적 사실관계는 공범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의 1심 유죄 판결에 의해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에 800만달러 대납을 요구했고 실제로 일부가 북한에 전달됐다고 판시했다. 이 전 부지사 요구에 따라 쌍방울이 달러를 보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남은 쟁점은 이 대표가 대납에 관여했느냐다. 이 대표 방북 사례 용도의 돈이 송금됐음이 인정된 만큼 이 대표가 몰랐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성립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이 전 부지사도 검찰 조사에서 “이재명 지사에게 (대북 송금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민주당 쪽에서 온갖 압박을 가하자 입장을 번복했다. 이 사건은 이 전 부지사가 유죄면 이 대표도 유죄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법원이 이 전 부지사에게 1심 유죄 판결을 내린 데는 이 대표도 공범이란 심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법원은 일련의 관련 판결을 통해 이 대표 핵심 혐의 중 최소 3건을 ‘예비적 유죄’로 판단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런 속에서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자숙할 기미 없이 방탄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고 있다. 위증 교사 1심 무죄가 나오자 기세를 올리며 오만의 폭주를 거듭하는 모습이 기가 막힌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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