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딸을 둔 50대 엄마의 푸념이다. 백수 딸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어느 순간부터는 취업 준비도 자기 계발도 안 하면서 백수로 지낸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기 합리화. 소셜미디어에는 아들딸들의 이런 정당화도 있다. “엄마 내 친구 누구는 나처럼 집에서 놀면서 설거지도 안 해준대. 그래도 난 기특하지 않아?” “엄마 저거 봐봐. TV에 저렇게 사람 죽이는 나쁜 놈들 말야. 요즘에는 정신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서 나쁜 짓만 안하고 살아도 1인분 하는 거래.”
‘다 컸는데 안 나가요.’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다. 말 그대로다. 어른이 됐는데도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 물론 예능이긴 하지만, 시청하다가 소름이 돋았다는 부모들이 꽤 있다. 마흔 다 된 아들이 늙은 부모 집에 얹혀산다.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는 부모에게 ‘파이팅’ 한 번 외쳐주고 다시 자러 들어가는 캥거루족 아들. 방송은 그래도 한 번은 깼다고 그를 ‘효자’로 칭찬하는 중이다. 시청자 반응을 떠보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는데, 내년 1월부터 고정 편성됐다.
인구구조 대전환기의 대한민국. 다들 저출생과 혼인율 저하는 걱정하지만, ‘캥거루족’ 문제는 입에 잘 올리지 않는다. 국가 소멸을 걱정하게 만드는 거대 담론 저출생 문제와 달리, 다 컸는데 안 나가는 내 자식은 타인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일 것이다. 최근 공개된 통계청의 2023년 조사 결과는 우리가 막연하게 추정했던 캥거루족의 비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49세의 수도권 미혼 남녀 열 명중 여섯 명은 부모와 동거 중이었다. 20대의 69.7%는 그렇다 쳐도, 30대도 절반 넘는 50.1%가 부모 품을 떠나지 않았고, 40~49세 미혼 남녀도 40.9%가 캥거루족이었다.
결혼은커녕 독립도 하지 않는 자식들. 취업난과 터무니없는 집값 등 젊은 세대도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5060 세대의 경제적·심리적 고통은 그 이상이다. 최근에는 가슴 아픈 통계 하나가 추가됐다. 50~54세의 25%가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돌보는 ‘이중 부양’ 중이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50~64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다. 50~64세 전체로 보면 15%가 이중 부양을 하고 있었다.
태어나 보니 선진국이란 말이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5060 세대와 달리,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라는 비유다. 하지만 그렇게 아쉬운 것 없이 자라다 보니 큰 야망도, 욕심도 없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선진국서 태어난 20대는 복지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데, 개발도상국의 5060 부모는 은퇴 후에도 자식들 먹여살리느라 아파트 경비와 식당 알바 뛴다는 자조가 있겠는가. 게다가 아버지 무서워하던 예전 세대와 달리, 요즘 Z세대에게 ‘아빠’는 크게 두려울 것 없는 존재다. 동년배인 한 50대 동료는 “‘때리는 아버지’ 미워하며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지금 보니 나는 친구도 안 되고 권위만 잃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늙어가는 대한민국. 캥거루족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경제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다. 상위 중산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층에서, 많은 청년들은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로 독립·결혼·출산을 모두 꺼리고 있다. 나이 든 자식들과 동거하며 얻는 행복과 고마움도 물론 있겠지만, ‘캥거루족의 나라’는 늙은 부모들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끔찍한 상상도 든다. 기대 수명 길어진 시대, 미래엔 100세 부모가 7080 자식 장례를 먼저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나이 든 아들딸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