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를 지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실제 성격은 정반대였다. 지독한 일중독이었던 그는 직원이든 동업자든 성에 차지 않으면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소리”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경쟁 업체를 죽이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넷스케이프 죽이기다. 1990년대 인터넷이 태동하면서 넷스케이프가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시장을 선점하자, 그는 막강한 PC 운용체제 ‘윈도’에 자사의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고, 심지어 넷스케이프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오류가 발생하도록 조작해 기어이 넷스케이프를 망하게 했다.
그는 이 일로 법무부로부터 독점 소송을 당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빌 게이츠의 증언 영상을 보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억나지 않는다”를 연발하고 심지어 손가락질과 기지개까지 하는 장면도 나온다. 법원이 게이츠를 망신 주기 위해 영상을 공개했지만 게이츠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쳇말로 싸가지 없는 그의 태도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일본 제조업에 밀려 죽어가던 미국의 첨단 산업을 일으켰다는 것을 더 높이 평가했다. 그렇게 그는 미국 기업가의 표상이 되었다.
한국은 어떤가? 아무리 뛰어난 기업가라도 한 번 스텝이 꼬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요즘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가 그런 케이스다. 주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된 그는 10월 말 101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채 일주일도 안 돼 검찰이 다시 카카오 본사와 계열사인 카카오모빌리티를 압수수색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번엔 공정거래위원회가 택시 호출 서비스 플랫폼인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해 독점력 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무려 2주일간 다섯 차례에 걸쳐 카카오를 샅샅이 뒤졌다.
카카오는 과징금 폭탄도 맞았다. 공정위는 10월 카카오모빌리티의 콜(호출) 차단, 즉 경쟁업체 가맹택시에 콜을 주지 않은 행위에 대해 7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작년 2월에는 자사 가맹 택시에 콜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비(非)가맹택시를 차별했다며 271억원을 부과했다.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타트업에 영업 이익의 3~4년치에 해당하는, 토종 플랫폼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카카오 측 반론은 차치하더라도 경쟁 택시에 대한 ‘콜 차단’과 자사 택시에 대한 ‘콜 몰아주기’가 어떻게 보면 같은 사안의 양면(兩面)으로 볼 수 있고 위반 시기도 상당 부분 겹친다. 이외에도 금융감독위원회가 최근 회계처리 기준 위반으로 과징금 34억원을 또 물렸다.
더 난감한 것은 김범수 창업자가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데도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이다. 카카오뱅크·페이 등 알짜 계열사의 쪼개기 상장과 일부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논란, 이로 인한 주가 폭락으로 200만 소액 주주들의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탓이다. 우리사주를 배정받은 직원들도 평균 1억원 이상 손실을 본 상태여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런 난맥상의 가장 큰 책임은 규모에 맞는 기업 문화와 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지 못한 김범수 창업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는 회사를 키운 뒤 증시 상장을 하거나 매각을 해서 큰돈을 버는 성공 방식을 너무 즐겼다. 계열사 숫자가 한때 150여 개에 이르고 골목 상권 침해 등 잦은 구설에 오른 것도 남의 돈으로 잔치를 하는 비즈니스 모델 탓이 크다. 하지만 이 난맥상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도 김범수 본인이다. 카카오 그룹이 불과 10년 만에 급격히 몸집을 불렸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매우 이질적이며 소속감도 약해 김범수가 아니면 구심점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
김범수 창업자는 네이버의 이해진, 엔씨소프트의 김택진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시대를 연 주역이다. 그는 한게임을 창업해 네이버와 합병하고 절치부심하다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인들은 카카오톡 대신 페이스북의 왓츠앱이나 중국의 위챗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회초리를 들어서 야단치면 될 일에 칼을 휘둘러 기업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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