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라우라 쇼뢰더(29)씨는 10년 전 한류 드라마를 접한 뒤 한국 문화에 매료됐다. 독일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고 서울대 국문과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이후 귀국해 석사까지 마친 뒤 지난해 재입국해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이 개설한 ‘번역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인 양이(33)씨도 고향인 쓰촨에서 한국학 석사 학위, 서울대에서 한국현대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쇼뢰더씨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양이씨는 “내가 아는 중국 출판사가 한강의 수상 직후 한국 작품 저작권 확보에 나서 단숨에 10권을 계약했다”며 “중국에 돌아가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해마다 약 30명이 쇼뢰더와 양이씨처럼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를 육성하는 2년 코스 정규 과정을 밟는다.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금부터가 한국 문학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번역가 양성을 강조했다. /전기병 기자

현재의 번역 아카데미 과정을 완성한 이는 올 상반기까지 번역원장을 지낸 곽효환 시인. 곽 시인은 1992년부터 2021년 초까지 민간 번역 지원 기관인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상무도 역임했다. 우리 문학 작품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 지금까지 3000종 정도가 번역·출판됐다. 그 중 번역원이 약 2200종, 대산문화재단이 약 400종으로 전체의 85%를 넘는다. 곽 시인은 두 기관 모두에서 재직하며 한국 문학 세계화를 이끈 산증인이다.

ㅡ번역 지원 업무를 총괄한 만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남다를 것 같다.

“한강은 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집중적으로 받은 작가다. 지금까지 28개 언어로 80종 넘게 번역됐다. 한강 작가가 지난 10일 노벨상 시상식 직후 현지 기자회견에서 ‘내 문장마다 함께 있다’는 말로 번역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을 때 정말 뿌듯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은 한국 문학의 최종 목표가 아닌 중간 기착지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번역가 수를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

그래픽=이철원

ㅡ한국 문학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해외 출간된 작품이 얼마나 많이 팔렸나 조사해보고 깜짝 놀랐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30만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16만부가 나갔더라. 출판계에선 1만부를 넘기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런 작품도 27종에 이른다. 번역 지원 초기엔 우리 문학을 세계에 소개하는 데 만족했다. 어느덧 그 단계를 넘어 세계의 독자들이 우리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한강의 수상은 그 흐름을 가속하는 효과를 줄 것이다. 향후 한국 문학의 번역 수요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ㅡ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나?

“그간 꾸준히 노력했지만 최고 수준의 번역가는 20명이 채 안 된다. 이런 규모로는 한국 문학 번역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번역가를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 문학 작품을 제대로 옮기려면 번역 후 작품의 텍스트로서의 예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현재 번역아카데미가 배출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번역원장 취임 후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어·불어 등 주요 7개 언어로 해마다 전문 번역가 7~8명을 양성해 전체적으로 한 해 50명 정도 배출하는 게 목표다. 그렇게 10년 쌓아도 고작 500명 정도다. 그런데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ㅡ번역아카데미를 굳이 대학원대학으로 바꾸려는 이유는?

“아카데미 수강생의 80%가 외국인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이들이다. 이들이 수료증이 아닌 정식 학위를 갖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대학이나 한국 관련 문화 기관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평생 한국 문학 세계화의 첨병으로 활동할 것 아닌가. 교육부 인가만 나면 곧바로 전환이 가능하게 교수진을 확보했고 커리큘럼도 다 짜놓았다. 번역원의 숙원 사업이다.”

ㅡ한국 문학 번역가로 활동할 외국인은 많은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 예를 들어보자. 그곳 동아시아학부 지원자 수는 과거 중국·일본·한국 순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이 1위다. 정원이 70명인 한국학과에 2000명이 몰린 적도 있다. 낙방하면 다른 과로 입학 후 한국학과 편입을 노릴 정도다. 상당수는 졸업 후 한국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을 번역가로 육성해야 한다.”

ㅡ한국 문학의 해외 문학상 수상도 부쩍 잦아졌다.

2000년 이전에는 해외 문학상 수상은커녕 후보가 되는 일조차 드물었다. 그런데 2003년 오정희의 ‘새’가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받으며 수상의 포문을 열었다.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엔 봇물 터지듯 수상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총 67회 수상 후보작이 나왔고, 실제 수상은 44회에 이른다. 영미 언론의 한국 문학 작품 리뷰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연간 200종 넘는 우리 문학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번역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

ㅡ온통 장밋빛으로 보기에는 우리 문학 내부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 경제의 특징이 압축 성장이다. 한국 문학도 정부와 민간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단시간에 세계화가 진행됐다. 그런데 압축 성장의 부작용이랄까, 성과가 큰 반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제2의 한강이 나오려면 시인과 소설가가 계속 작품을 낼 수 있도록 독자가 받쳐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성인 60%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 밖에선 각종 문학상을 받는데 안에선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이런 풍토가 지속되면 뛰어난 작가 몇몇이 해외에서 주목받는다 해도 문학 한류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독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한국 문학 해외 소개 역사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는 푸른 눈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앨런이 전래 민담을 모아 1889년 미국 푸트남 출판사에서 한국 민담집을 냈다. 3년 후 프랑스에서 ‘춘향전’이, 그 이듬해 독일에서 한국 전래 동화와 민담이 출간됐지만 모두 번안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첫 번역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한 ‘구운몽’부터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오에 겐자부로까지 연거푸 노벨문학상을 받자 “우리도 문학 세계화에 도전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1992년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설립자의 출연으로 대산문화재단이 탄생했다. 이듬해 김원일 소설 ‘마당 깊은 집’ 등 5권을 영어와 불어로 출간했다. 2001년엔 한국문학번역원이 가세했다. 국내 작품의 해외 번역 출판은 이 두 기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외국 문학을 전공한 한국인 교수가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겼다. 1세대 번역가라 한다. 이후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 번역자와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이 짝을 이뤄 공동 번역하는 2세대 번역가 그룹이 등장했다. 2011년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10만부 넘게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며 이 작품을 번역한 김지영씨가 주목받았다. 이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가 등장했다. 곽 전 원장은 두 사람을 ‘3세대 번역가’의 출발로 본다. 김씨처럼 일찌감치 외국에 나가 현지어를 모국어처럼 쓰거나, 스미스처럼 자국어의 문학적 표현 능력이 뛰어나면서 한국어를 잘 아는 외국인 번역가들이다. 현지에서 통할 한국 작품을 골라내는 안목을 갖춘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곽 전 원장은 한국 문학 세계화의 장래는 3세대 번역가를 얼마나 키워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135년 전 美에서 첫 출간… 지금은 年 200종 넘게 번역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는 푸른 눈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전래 민담을 모아 1889년 미국 푸트남 출판사에서 한국 민담집을 냈다. 3년 후 프랑스에서 ‘춘향전’이, 그 이듬해 독일에서 한국 전래 동화와 민담이 출간됐지만 모두 번안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첫 번역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한 ‘구운몽’부터다.

지난 2일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문학번역원의 고급문학강독 수업을 듣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오에 겐자부로까지 연거푸 노벨 문학상을 받자 “우리도 문학 세계화에 도전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1992년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설립자의 출연으로 대산문화재단이 탄생했다. 이듬해 김원일 소설 ‘마당 깊은 집’ 등 5권을 영어와 불어로 출간했다. 2001년엔 한국문학번역원이 가세했다. 국내 작품의 해외 번역 출판은 이 두 기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외국 문학을 전공한 한국인 교수가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겼다. 1세대 번역가라 한다. 이후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 번역자와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이 짝을 이뤄 공동 번역하는 2세대 번역가 그룹이 등장했다. 2011년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10만부 넘게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며 이 작품을 번역한 김지영씨가 주목받았다. 이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가 등장했다. 곽 전 원장은 두 사람을 ‘3세대 번역가’의 출발로 본다. 김씨처럼 일찌감치 외국에 나가 현지어를 모국어처럼 쓰거나, 스미스처럼 자국어의 문학적 표현 능력이 뛰어나면서 한국어를 잘 아는 외국인 번역가들이다. 현지에서 통할 한국 작품을 골라내는 안목을 갖춘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곽 전 원장은 한국 문학 세계화의 장래는 3세대 번역가를 얼마나 키워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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