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6%p 차로 졌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10%p 앞섰지만 당원 투표에서 20%p 이상 뒤처진 결과였다. 홍 후보는 패배 원인을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에게 표를 호소해야 하는 정당이 국민 정서와 반대로 갈 수 있느냐는 항변처럼 들렸다.
그때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당심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요즘 홍준표 대구시장은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 지킴이로 나섰다. 갤럽 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 75%, 반대 21%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찬성 27%, 반대 66%로 저울추가 반대편에 놓였다. 홍 시장은 바로 이런 국민의힘 당심을 대변한다. 탄핵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레밍(쥐)”이라고 부르며 “당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민심 쪽에 서는 선택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마자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계엄에 반대한다”고 했다. 곧장 국회로 달려가 계엄 해제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보다도 동작이 빨랐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민심 흐름과도 보조를 맞췄다.
윤 대통령을 지키자는 골수 지지층에게 한 전 대표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계엄 사태 이후 20일 넘게 광화문 감리교 빌딩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에서 ‘살모사 한동훈’ ‘한동훈 밟아’라는 구호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국민의힘 다수파인 친윤 그룹은 이 정서를 업고 한동훈 대표 퇴진을 밀어붙였다. 계엄 반대로 반짝 상승했던 한 전 대표의 지지율은 다시 미미한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심과 민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계엄 사태 직후 오 시장은 “탄핵만은 피해야 한다”며 “대통령 2선 후퇴와 거국 내각 구성” 쪽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령 해제 표결을 막으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 데다 “계엄은 정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데 따른 태도 변화였다. 오 시장은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탄핵을 찬성할 걸” 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상당수 보수 지지층도 오 시장과 비슷한 심경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보수 진영에는 홍준표, 한동훈, 오세훈 세 갈래의 정서가 혼재해 있다. 한쪽은 “대통령을 탄핵하면 보수는 궤멸한다”고 했다. “대통령을 내쳐서 대선이 앞당겨지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꼴”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또 다른 편은 “대통령 탄핵을 막으면 보수는 궤멸한다”는 정반대 주장을 폈다. “국민 75%가 찬성하는 탄핵에 맞서는 정당은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도 반박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니 둘 사이에서 번민하는 보수도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회의 탄핵 소추는 불가피했다고 믿는 쪽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반 세기 전으로 돌리려 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정치 셈법으로 헤쳐 나갈 수는 없다. 국민의힘이 더 버텨본 들 한 주일, 혹은 두 주일 차이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스팔트 광장 위에서 영하의 추위를 버티며 “탄핵 결사 저지”를 외치는 태극기 세력의 진정성도 존중한다. 탄핵에 대한 찬반 어느 쪽이 보수를 살리고 망치는 길인지 답을 내기는 어렵다. 다만 탄핵 찬반 의견 차이로 보수가 분열하면 망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결정적 원인은 박근혜 탄핵이 아니라, 홍준표(24%) 안철수(21%) 유승민(7%) 세 후보가 반(反)문재인 표심 52%를 분열시킨 데 있었다.
따지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극도 내 편을 하나하나 쳐나간 뺄셈 정치에서 비롯됐다. 지지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으니 총선 참패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결과 거대 야당에 무차별 탄핵과 예산 삭감으로 농락당하자 계엄이라는 무리수로 응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친윤 그룹은 “(탄핵에 반대한) 90명끼리 똘똘 뭉치면 된다”면서 윤석열 몰락 코스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국민의힘 24%, 민주당 48% 더블 스코어로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예고해 주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탄핵을 놓고 보수끼리 네가 옳으니 그르니 삿대질을 해본들 부질없는 일이다.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던 상대를 맞아 세 갈래 보수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느냐는 마지막 승부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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