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엔 고전을 다시 읽는다. 시간을 이겨낸 작품을 교훈으로 삼자는 세밑 의례다. 올해 고른 작품은 ‘리어왕’. 어리석은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부른 인간을 그린 셰익스피어 대표작이다. ‘리어왕’뿐 아니다. ‘맥베스’ ‘오셀로’ ‘햄릿’까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비장한 그리스 비극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오이디푸스처럼 제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지옥의 구렁텅이로 내몰린 신화 속 영웅들과 달리,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은 모두 제 무덤 제가 판 인간 군상이다. 누가 덫을 놓거나 음모를 짠 게 아니다. 자기 성격 때문에 망한 존재들이다.

리어왕의 오판은 바른말 멀리하고 아부에 취약했던 스스로의 어리석음에서 시작됐다. 리어왕의 그 유명한 ‘러브 콘테스트’를 떠올려보라. 딸 셋을 둔 늙은 아버지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첫째 딸 고너릴, 둘째 딸 리간, 그리고 막내 코딜리아. 일찌감치 아버지 떠나 시집간 언니들과 달리, 늘 옆에서 자신을 돌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셋째 딸. 신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늙은 왕은 묻는다. 얘들아 얘들아 너희 중 누가 나를 제일 사랑하느냐. 하늘땅 별땅 운운하며 입 발린 소리를 하는 언니들과 달리, 한결같던 효녀 코딜리아는 담담하게 말한다. 어찌 사랑을 비교하거나 계량할 수 있느냐고. 하늘이 준 인연이니 평소처럼 아버지를 모실 뿐이라고.

어리석은 왕은 격노하고, 막내 주려고 떼어 놓았던 땅과 재산까지 언니들에게 선물로 안긴다. 코딜리아에겐 지참금 한 푼 주지 않고 바다 건너 프랑스로 시집보내고. 그 이후의 비극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재산 받기 전엔 갖은 아양 떨던 두 딸이 이제 아버지를 짐짝 취급하고, 리어왕은 흰 머리 풀어헤친 백수광부가 되어 광야에서 홀로 폭풍우를 맞이한다. 교만이 부른 오판, 무지가 불러온 파국이다.

맥베스 역시 욕망 때문에 타락하다가 선 넘고 파멸에 이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대표 격이다. 용맹스러운 장수였지만, 사실 그 이상의 큰 야심은 없었던 사내.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날, 한밤중 광야에서 맥베스는 세 마녀를 만난다. 이어지는 예언과 주술, “만세, 앞날의 왕이시여!” 남편보다 더 야심만만했던 레이디 맥베스는 배우자를 부추겼고, 안 하겠다는 남자에게 선을 넘게 만든다. 결국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좌에 오른 맥베스. 하지만 그 이후의 비극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이성이 아니라 끝까지 주술과 예언에 의지했던 맥베스 부부는, 결국 리어왕과 같은 최후를 맞는다.

베네치아의 용병 출신인 늙은 오셀로 장군은 어떤가. 출신에 대한 열등감과 젊은 아내 의처증으로 시달렸던 이 못난 사내는 스스로 삶을 버렸고, 정의는 오직 자기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졌던 햄릿 역시 선왕의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새드엔딩으로 끝났을 뿐이다.

고전이 위대한 이유는 시간을 이겨냈다는 것. 가장 오래된 작품이 가장 젊은 당대의 교훈이라는 역설을 고전은 웅변한다. 이왕 셰익스피어로 시작했으니, ‘템페스트’에 나오는 한 구절로 마무리하자. “지옥은 텅 비었고, 악마들은 다 여기에 있구나.”

세상은 지금 도처에 아수라장이다. 다시 한번, 당신을 망치는 것도 구원하는 것도 당신 자신이다. 교만으로 무장한 허영·오판·무지·공명심. 타인이나 신을 원망하지 말 것. 내일은 2025년의 첫날, 새해의 교훈이자 스스로의 경계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