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대학생들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한덕수 총리 지지한 미국은 사죄하고, 이재명 범죄인 취급한 발언 취소하고 사과하라'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뉴시스

“세월호 사태를 보며 운동가로 살 것을 결심했어요.”

‘탄핵 집회를 축제로 만든 97년생 사회자 정체’라는 동영상을 100만 가까운 사람이 봤다. 그녀 말대로라면 세월호 참사가 2014년이니 17세 때 운동가로 진로를 정했다. 그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사회자였다. 그때 걸그룹 노래에 맞춰 ‘퇴진 윤석열, 탄핵 윤석열’ 구호를 유도해 유명해졌다. 응원봉, K팝이 등장한 탄핵 집회의 배후(?)에 그녀가 있었다. 세월호로 깨어나 이태원 참사 때 처음 집회 사회를 맡게 됐고, 그게 탄핵 집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헌법 질서의 위기를 가져온 비상계엄은 앞으로 20년 이상 정치에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탄핵 시위의 전면에 등장했던 2030 여성들의 보수 혐오 정서는 오래갈 것 같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 반미 시위,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시위를 경험했던 지금의 4050세대는 20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정당에 투표해왔다. 그와 유사한 일이 2030 여성들에게 일어났고 그 선두에 28세 여성이 있었다.

탄핵 집회 보름 전, 10여 명이 참석한 초라한 집회가 있었다. ‘국보법 폐지 시민행진’이라는 집회였다. 자주통일평화연대 국장으로 소개한 그녀는 보름 뒤 수만 명 집회의 사회를 보게 될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녀는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 기저에는 국보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제정 76년, 국보법 폐지” 구호가 나왔다. 참석자들은 “한미의 전쟁 연습이 남북 관계를 파탄시켰다”고 했다. 그녀는 1년 전 같은 장소에선 ‘국보법 폐지 국민행동’ 국장이라는 직책으로 나와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을 “전쟁놀이”라고 비난했다.

하루는 국보법 투사로, 다음 날은 한미 훈련 반대 투쟁으로, 그다음 달에는 이태원 유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다, 다른 장소에선 친일 청산을 외친다. 국보법폐지 국장,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 응원봉 집회 사회자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이 단체들의 실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들이니 28세에게 국장이란 직책은 별 의미가 없다. 탄핵 시위 참가자들은 이제 그녀를 국보법 폐지, 반미 운동가 대신 에스파의 ‘위플래쉬’ 리듬에 맞춰 ‘탄핵 윤석열’을 외친 사회자로만 기억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며 “종북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말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른 이들은 다름 아닌 종북 세력이었다. 종북 세력들은 자신들을 20년 넘게 짓눌렀던 ‘종북’의 압박붕대가 풀어지는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독재 세력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친북·빨갱이 같은 낙인을 찍어 악용하면서 진짜 친북 좌파들이 세를 얻었다. 80년대 군부독재와 주사파의 등장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런데 주사파들이 진보의 주류로 나서자 2001년 주사파에 반대했던 좌파 정당 대표는 “남한 민중보다 조선노동당을 우위에 두는 종북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며 ‘종북’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종북은 보수가 만든 용어가 아니라 좌파 내부에서 나온 말이다. 친북 세력은 그래서 ‘종북’이란 말이 뼈아팠고 거북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계엄 명분으로 종북 세력을 내세우면서 역설적으로 이 말이 위기를 맞았다. 종북 세력을 비판하면 그들은 “윤석열 편이냐, 계엄을 옹호하느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친다.

오히려 종북 세력에게 조롱당하고 이용당한 건 윤 대통령 부부였다. 김건희 여사는 인터넷 몇 번만 뒤져도 금방 나오는 친북 인사에게 명품 가방을 받고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장을 보냈다. 대통령은 이 사건을 뭉개려다 총선에서 참패했고, 결국 무리한 계엄으로 이어졌다. 종북 세력이 최근 30년 사이 거둔 최대 전리품이 명품 가방 사건이다. 도포 자락 휘날리며 기행을 일삼던 종북 유튜버에게 ‘7시간 녹취록’이라는 먹잇감도 바쳤다.

탄핵 집회에 탄핵과 반미, 국보법 폐지 구호가 엉켜 있다. 농민들 트랙터 시위에 엉뚱하게 ‘대북 제재 해제’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덕수 대행을 지지했다고 미국 대사관에서 반미 시위를 했다. 종북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언과 반대로 그들에게 산소통을 달아준 게 이번 계엄이었다.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을 너무 몰랐고, 종북 세력은 대통령 부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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