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 지속가능미디어 스타트업 '임팩트온' 대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일 유튜브에 직접 등장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안한 사회적 가치 민간축제인 ‘SOVAC(소셜밸류커넥트) 2020’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이렇게 정의했다.

“미래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ESG 개선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말한 ESG가 무엇인지 안다면, 트렌드에 밝은 리더일 가능성이 높다.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줄임말로,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일컫는다. 쉽게 말하면, 매출·영업이익·순이익 등 재무 성과만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협력업체와의 상생, 이사회 구성 등 비재무 요소를 본다는 말이다.

ESG 투자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2012년 13조2000억달러에서 2018년 30조7000억달러(약 3경7000조원)로 2.4배가량 늘었다(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 미국과 유럽 등에선 전체 운용자산 대비 25%, 많게는 60%를 차지한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4~6월 ESG펀드에 711억달러(약 84조원)가 유입됐다. 자금이 속속 빠져나간 다른 상품과 달랐다.

ESG가 왜 늘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 기업 가치 평가가 잘 안 들어맞는 시대가 됐다. 무형자산 때문이다. 애플이나 아마존 등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은 모두 무형자산이 많은 기업들이다. 미국 S&P 500 기업의 자산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975년 17%에서 2015년 84%로 역전됐다(오션토모 조사). 앞으로는 브랜드와 평판은 좋은지, 기업의 핵심 인력이 뛰어난지, 미래 고객을 끌어당길 조직 문화가 있는지 등이 훨씬 중요하다. 무형자산을 볼 수 있는 핵심 지표 중 하나가 ESG다.

‘ESG 투자는 수익률이 부진하다’는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경우 사회책임지수(MSCI World SRI)가 ‘MSCI 세계지수(MSCI World Index)’보다 수익률이 더 낫다고 밝혔다. 특히 2008년, 2012년 경제 위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폭락장에서 ESG 등급이 높은 펀드는 낙폭이 적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관 투자자들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물론 수익률은 아직 논란이 분분한 영역이다.

오히려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ESG 리스크다. 근래 기업의 악재는 대부분 ESG 영역에서 나온다.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 일부 기업 오너의 막말 사건, 협력업체와의 갑질 사건 등이 그것이다. 투자자들은 ESG 리스크가 높은 기업을 모니터링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의 변화다. 이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삽시간에 공유한다. 조지 플로이드 흑인 사망 사건에 소극적 행보를 보인 페이스북을 두고 소비자, 내부 직원들까지 반발한 게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는 윤리와 젠더(다양성), 공정, 환경 등”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와 블룸버그 조사에 의하면, 미국 내 자산운용사 중 89%는 “ESG 투자가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닌 금융업의 주류”라고 응답했다. MSCI, S&P, 톰슨로이터, 블룸버그 등은 ESG 평가기관을 속속 인수 합병하면서, 기업 ESG 평가 모델 표준 전쟁에 돌입했다.

우리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ESG를 ‘착한 투자’ 혹은 ‘CSR(사회 공헌)’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기업 평가 기준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지난 6월 보고서에 한국전력이 부정적인 케이스 스터디로 등장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3개의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편지를 사장에게 보냈다”며 “기후 리스크 관련 공시를 강화하도록 요구하겠다”고 썼다. ESG 등급이 낮으면 투자 불이익도 예상된다. 공부하고, 대응하고,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