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전광석화처럼 결정됐다. 지난주 소식이 처음 전해진 뒤 사흘 만에 한진칼(대한항공 지주회사), 대한항공, 아시아나가 각각 이사회를 열고 M&A(인수·합병)와 관련한 증자 안건을 의결했다. 두 대형 항공사가 합치면서 초대형 국적 항공사가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그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국내 항공업계 1·2위가 합치는 만큼 국내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갖게 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야 한다. 원래라면 승인이 내려지지 않을 조건이지만 이번엔 아마도 회생불가능한 회사(아시아나)와 합친다는 이유로 예외를 인정해줄 분위기다. 아시아나가 가진 잠재적 부실에 대한 충분한 실사 없이 급하게 의사 결정이 이뤄진 점도 향후 법적 다툼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전에 아시아나 인수 의사를 밝혔던 HDC(현대산업개발)가 결국 인수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12주간 추가 재실사 요청을 대주주인 산은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을 매각하는데 정부가 개입해 사실상 인수 주체를 정하고 금융 지원까지 한다는 점도 특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통합 후 실현될 가능성이 큰 노선 통폐합과 이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양사 노조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산적한 난제(難題)들을 별개로 하더라도 이번 결정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우려된다. 발표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8000억원을 지원하고 한진칼은 이 자금을 기반으로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대한항공은 2조5000억원 중 1조8000억원을 아시아나 인수에 쓰는데, 1조5000억원은 아시아나가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하고, 3000억원은 아시아나 회사채(영구채)를 살 계획이다. 나머지 7000억원은 통합 후 추가로 필요한 자금 소요를 위해 비축한다.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은 8000억원을 한진칼에 지원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걸 돕게 되면서 인수 금액의 45% 정도를 책임지는 셈이다. 그럼 나머지는 누가 부담하는가? 국민연금, 우리사주조합 등 대한항공 일반 주주들이다. 지배주주 일가는 가만히 앉아서 아시아나 경영권을 확보하는 반면, 나머지 대한항공 일반 주주들은 지난 7월 이미 7700억원 규모 신주 인수에 참여한 데 이어 추가로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신주 발행에도 동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배주주는 희귀한 무자본 M&A를 성사시키지만 일반 주주들은 어떤 편익이 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해석에 따라서는 아시아나 인수 대금 1조8000억원 전액을 대한항공 일반 주주들이 부담하고, 산은이 지원하는 8000억원은 한진그룹 유동성과 우호지분 확보에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 일반 주주와 아시아나 일반 주주 의사가 반영되는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일부 지분만 인수해 기업 전체를 손에 넣는 한국식 M&A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문제다. 미국에서 M&A가 대부분 기업 지분 전부를 취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대한항공 주가는 M&A 소식이 전해진 뒤 급등과 급락을 오가고 있다. 외국인과 기관은 M&A 소식과 무관하게 계속 순매도를 유지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긍정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번 M&A는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던 과정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물론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나중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로 남았지만 여전히 정부가 민간 기업 합병에 깊숙이 개입하는 게 정당한가라는 논란은 남아 있다. 과연 현대·기아차처럼 대한항공·아시아나도 장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까. 미리 장담하기엔 현재 양사의 재무적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