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식량과 의료품을 지원했지만,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한 16국에는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멕시코인과 멕시코계 미국인이 미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당시 미국과 멕시코가 맺은 병역 협력 협정에 따른 조치였다. 미군 참전 용사 180여만명 중 10% 정도인 18만명이 히스패닉이었고, 이 중 10만명 이상이 멕시코 참전 용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 중에 멕시코인만으로 구성된 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라틴계 미군 3700여명 중 상당수가 멕시코인 또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깃발 아래 싸운 멕시코인들의 희생은 역사 속에 묻혔다.
전쟁 이후 멕시코에서는 6·25전쟁에 참전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편이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싸운 용사들의 존재는 점점 잊혀지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멕시코 외교부 동료의 아버지인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 씨도 6·25전쟁 참전 용사였다. 그는 전쟁 중 겪었던 고통을 가족에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가끔 혹독했던 전장(戰場)을 떠올리며 눈물짓곤 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뵌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았다. 그는 갑자기 트럭이 지나가든지 어딘가에서 큰 소리가 나면 갑자기 얼어붙어 몇 분 동안 귀를 막곤 했다.
지난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계기로 미군 소속으로 참전한 멕시코 용사들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멕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은 ‘숨은 영웅’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70년 전 한국을 위해 싸운 멕시코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찾는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게재하고 현지 일간지에 광고를 냈다. 한국의 보훈처는 이렇게 찾은 참전 용사 4명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했다. 멕시코 정부도 한국 대사관과 협력해 생존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을 찾아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기반 마련에 기여한 공헌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4월 24일 멕시코시티의 주(駐)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멕시코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결성됐다. 아흔 살 전후의 생존 참전 용사 3명과 가족, 작고한 참전 용사 가족 등이 참석했다. 거동이 불편한 참전 용사 한 명은 화상으로 출범식을 함께했다. 그동안 ‘잊힌 존재’로 지내던 노병(老兵)들은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의 목도리를 목에 걸자 “70년 전 우리 형제와 친구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다. 이렇게 기억해 주니 자랑스럽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산도발 멕시코 국방장관은 축사에서 “6·25전쟁에 참전하고 희생한 여러분 덕분에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됐다. 여러분의 명예와 용기, 그리고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멕시코 참전 용사들의 활동을 담은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 씨는 참전용사회가 출범한 후 일주일 만인 지난 5월 1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1950년 9월부터 18개월 동안 참전한 그는 ‘한국에서 한 멕시코인의 기억’이란 회고록을 펴내기도 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멕시코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미래 세대와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 이제 6·25전쟁은 멕시코에서 ‘잊힌 전쟁’이 아니며, 비야레알 회장은 더 이상 역사 속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