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학
그것은 작은 얼룩이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데스크톱 컴퓨터로 300% 확대를 해도 없었다. 휴대폰으로 도쿄올림픽 조직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최대한 확대를 하니 그제야 나타났다. 모 교수가 그 얼룩이 ‘독도’라 지목했다. 일본의 도발이라는 것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발끈했다. 이낙연, 정세균 두 전직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고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통위에서 일본의 잘못된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한 달이 지났다. 그 얼룩은 그대로다. 하지만 외교부 대변인은 “올림픽 불참까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단다. 그러더니 이번엔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윤건영 의원이 도쿄올림픽 불참을 거론했다. G7 정상회의에서 양자 회담을 거부한 일본의 “버릇을 고치자”며 “올림픽 보이콧”도 고려하자는 것이다. 전직 총리들에 대통령의 복심까지 올림픽 보이콧을 거론하는데 국내외적으로 반응이 미지근하다. 어찌 된 일인가?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던지는 강경 발언이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년 전 일본 수출 규제 도입 때 당시 민정수석 조국은 ‘죽창’을 들자 했다. 그러더니 고작 우리 측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했다. 실효성이 없다. 일본이 우리에게 전략 물자를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교류협정(GSOMIA)을 종료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종료 의사를 철회했다. 일본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지소미아를 다시 종료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2년이 지나도록 일본 입장엔 변화가 없는데 지소미아 종료 얘기는 없다.
문 정부가 일본에 목소리만 높이다 용두사미로 끝낸 사례는 이 말고도 많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가 제기되자 문 대통령은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라고 했다. 두 달이 넘었는데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조용하다. 대통령의 공개 지시도 유야무야시켜 버린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대외적으로 불신을 부른다. 이제 일본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강경 발언을 가볍게 여긴다. ‘국내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는 말은 국내적으로 ‘과잉’을 부른다. 전직 총리들과 대통령 측근 인사가 경솔하게 올림픽 불참을 운운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어차피 ‘득표용 말 잔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밖으론 불신, 안으론 과잉이 초래된 이유는 문 대통령의 우유부단 때문이다.
대통령의 우유부단은 사법부도 혼란에 빠트렸다. 2019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관련 자기 결정을 스스로 뒤집었다. 2011년에는 일본과 협상을 안 하면 위헌부작위라더니 이제는 자기들이 다룰 문제가 아니란다. 징용 판결도 불과 3년 만에 뒤집혔다. 위안부 문제 관련 불과 몇 달 사이에 같은 법원의 두 재판부가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문 대통령은 삼권분립을 핑계로 외교적 판단을 사법부에 떠밀었다. 이제 판결이 난립하니 어느 판결이 대외적으로 대한민국 공식 입장인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대통령과 외교 참모들이 착한 척만 하면서 책임은 회피하기 때문이다. 기자들 앞에서 일본에 대고 “덤벼봐(Try me)”를 외치던 정의용 장관의 기백은 어디 갔나. 오죽하면 좌파 진영에서마저 “내가 알던 대통령 맞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나.
이 외교 무정부 상태를 끝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지도를 내건 것은 외교적 도발이다. 그 도발에 집권당 핵심 지도자들이 올림픽 불참으로 대응하자니 이제 그럼 실천해 보라. 말만 하지 말고. 그것이 ‘국내용’ 외교를 종식하고 밖으로 불신을, 안으로 과잉을 불식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