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을 징계해 논란이 일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동해를 포함한 북서 태평양에 적지 않은 양의 고체·액체 방사성 폐기물을 투기하였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런던협약 이전(1972년)에는 사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투기할 방사성 폐기물의 양·종류를 신고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한 후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보고서 발간으로 러시아가 1972년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 해역에 방사성 폐기물을 투기해온 것이 드러났다.
당시 이 보고서를 접한 한국과 일본은 이 ‘청정 해역’에 러시아가 방사성 폐기물을 불법으로 투기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1993년 4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러시아 해양 투기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에서 해수와 해저토, 어류 등을 채취하여 방사능을 조사하였다. 러시아가 방사성 폐기물을 투기했던 해역은 러시아 경제수역에 해당했으므로 한국과 일본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투기 해역에 대한 공동 조사를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94년 3~4월(1차)과 1995년 8~9월(2차)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일본·러시아와 IAEA 전문가들은 해당 해역에 대한 공동 조사를 수행하였다.
필자는 1993년 1차 정부 조사부터 1995년 2차 3국 공동 조사까지 전 단계에 관여하였고, 2차 3국 공동 조사에서는 조사선에 승선하여 조사에 참여하였다. 3국 공동 조사 기간 내내 필자는 4500t급의 엄청나게 큰 조사선이 동해에 비해 얼마나 작은지 절감했다. 방사성 폐기물 투기 해역과 그 해역에서 충분히 떨어져 방사성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교 해역에서 채취한 해수·해저토를 분석한 결과, 두 해역의 방사능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는 엄청난 양의 동해 바닷물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부가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많은 비용과 시간을 쓰면서 3국 공동 조사까지 수행한 것은 방사능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어쩌면 일본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 논란도 원자력연구원의 보고서처럼 유사한 결과로 끝날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관리 중인 오염수를 해양 방출할 계획이어서 일본은 물론 주변국의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오염수 중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은 다핵종 제거 설비를 이용하여 제거하고, 제거가 불가능한 삼중수소는 방사능 배출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여 방출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보관 중인 오염 처리수의 해양 방출과 수증기 방출로 한국 국민이 받을 연간 피폭선량은 일반인의 연간 선량 한도인 1mSv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라고 한국원자력학회는 평가했다.
정부는 ①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일본의 오염 처리수 방출이 해수·해산물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②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③아울러 정부는 일본과 주변국 및 국제기구 등과 주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하고, ④이 채널을 가동하여 오염 처리수 처분에 필요한 국제 기준을 지키고, 오염수의 방출 전 오염 처리수 분석 결과를 국제기구와 이해 당사국에 공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⑤마지막으로 정부는 수입 해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역 강화 및 주기적 원양어업 지역의 방사능 측정도 확대해야 한다.
과학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는 순간 과학은 사라지고 정치 논리만 남게 된다. 이는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