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위기에 빠졌다. 인구 절벽으로 인한 학생 감소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 대학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하면서 분석해야 할 데이터는 쏟아지고 있고,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과거 같은 분석과 학습 방법은 쓸모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기술 변화의 속도는 200년 전 산업혁명보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아무도 부정을 하지 않는다.
이런 거대한 변화를 쫓아가기 위해 대학들이 종종걸음을 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학은 현재의 변화에 발맞추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는커녕 생존하기에 급급하다. 재정난에 처한 대학들은 겨우 전등과 난방 사용을 줄이고, 낡은 건물의 수리를 미루면서 몇 푼의 지출을 줄이는 데 몰두한다. 폐교를 앞둔 일부 대학의 얘기가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의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연구를 위한 새로운 실험 장비를 도입하고, 첨단 분야에 있는 최고 수준의 학자들을 채용할 여력이 있겠는가? 대학 등록금은 지난 13년간 동결되었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지급하지만, 이 지원이 대학의 교육과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핵심 기능은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 급변의 시기에 대학은 지금 신임 교수조차 제대로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임 교수의 상당 부분을 계약직 신분인 비정년 트랙 교수로 채용하고 있다. 전임 교수 비율은 맞추면서도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편법이다. 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날로 확대되는 마당에 신분마저 계약직이면 어떻게 유능한 교수를 채용할 수 있으며, 대학 내에 연구 능력을 축적할 수 있겠는가? 이런 채용 형태 때문에 신임 교수의 평균 연령이 무려 43세라고 한다. 20대나 30대 초의 나이에 막 박사 학위를 받아 첨단 분야를 연구한 젊은 교수는 채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교수 중 50세 이상이 70%에 이르며 40세 미만은 8%에 불과하다.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따라잡기도 불가능한 연령 구성이다.
대학의 연구 능력 저하와 고령화는 연구개발(R&D)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비는 한 해 약 100조원에 이르는데, 이 중 대학이 수행하는 비율은 8.3%에 불과하다. 유럽 선진국 대부분이 20% 내외, 미국과 일본이 13%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을뿐더러, 이 비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비는 지난 10년간 50조원에서 약 100조원으로 2배 증가했는데, 대학 자체 연구개발비는 2019년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 수준인 2113억원에 불과하다.
지나 반세기 동안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교육 덕분이었다. 선진국의 학문과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그것을 미래 세대에게 전수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의 역량은 다른 부문에 비해 계속 뒤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 경제와 국가경쟁력에 미칠 악영향은 멀지 않은 장래에 나타날 것이다. 공교육에서 제대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대학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자체 연구 및 교육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대학 재정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가 정한 연구개발 사업을 대학이 단순히 수주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안 된다. 대학 스스로가 역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 등록금을 자율화하든 아니면 정부의 직접적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전기료 몇 푼 절약하기 위해 전등을 끄고 있는 대학에서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