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부를 창조하게 되고 사회는 부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빵집 주인이 다른 빵집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열심히 일하면, 사회는 가장 맛있는 빵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주요 개념이다. 실제로 시장경제를 채택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큰 부를 창조하게 되었고, 세계 많은 나라들은 시장경제를 경제의 기본 체계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쟁에서 이긴 빵집 주인과 사회는 혜택을 보는데, 경쟁에서 진 빵집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다시 말해서 경쟁의 비용은 어떻게,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
애덤 스미스 이론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경제학자가 있다. 게임이론을 창시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내시(Nash)이다. 내시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나와 상대방이 서로 의사 결정을 할 때,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반드시 사회 전체에 최선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경쟁 관계에서는 최선보다는 상대의 희생으로 내가 이익을 취하는 차선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질서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 속에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 모두 차선을 택하게 되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은 내시가 증명한 여러 게임이론 중의 하나다.
애덤 스미스의 경쟁이 사회에 혜택이 되려면, 경쟁자들 사이에 모두 상대가 일정한 질서를 지키며 경쟁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세울 책임이 국가에 있다. 토머스 홉스가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국가는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질서에 대한 신뢰를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부패란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것을 말한다. 부패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소규모 부패는 일선 공무원들의 현장에서의 봐주기이다. 대규모 부패는 고위 정부 관계자들이 정책적으로 특정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 둘보다 더욱 피해가 심한 부패가 정치적 부패이다. 세 가지 부패 가운데 가장 사회적인 피해가 큰 것이 정치적인 부패다. 그러나 증명하기 어렵고 따라서 발견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적인 부패이다.
사회는 정치적인 부패가 일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다만 증명하기 쉽지 않아서 어쩌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부패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소규모 부패를 탓하고, 이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나서면 그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고 냉소적인 사람들이 사회에 많아진다. 이런 사회에서 정부가 유지하려는 룰과 질서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신뢰를 갖기 어려워진다. 시장경제의 기본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다.
시장경제 효과의 기본 가정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시민 정신을 갖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시민 의식이 있어야 한다. 시민 의식이란 자신의 이익 도모를 사회 전체의 이익 앞에 내세우지 않는 정신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시민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곳엔 시장경제가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매년 발표되는 국가별 부패지수(CPI)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여도 부패지수가 낮은 국가일수록 시장경제 효과가 높고, 또 국민소득 수준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