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태어나 28년간 살았던 평양에도 ‘인권’이란 표현이 있으나 그 본질이 다소 황당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권’은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신 수령님들(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모시고 사는 인민의 한없는 행복이고 영광” 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수령복’(훌륭한 최고 지도자를 만난 인민들의 행운) 이라고도 한다.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처음 접하면 ‘대체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반복해서 계속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진짜로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고 본능이다. ‘수령복’을 자그마치 장장 70여 년 누리며 사는 북한 주민들은 ‘인권’이 뭔지 알지도 못한다.
모든 북한 주민은 열 살 때부터 ‘조선소년단’이란 정치 조직 가입을 시작으로 수령 우상화 학습·강연, 선서와 노래 모임, 총화 등을 종신토록 한다. 일상에서 당과 수령, 국가 정책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 끌려간다. 정치범 수용소다.
인터넷이 뭔지 모르는 북한 주민들은 남한 소식이나 외국 방송을 몰래 접해도 종신 수감당하며, 직업은 당국이 지정해준 것만 갖는다. 생계 목적으로 장사를 하려 지역 이동을 할 때도 반드시 당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배고파 이웃 나라에서 식량을 사려 국경을 넘으면 ‘민족 반역자’가 된다. 눈 씻고 봐도 여기에 무슨 인권이 있단 말인가.
‘인권’이란 민족, 국가, 인종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지니는 보편적 권리와 지위를 말한다. 즉 사람은 말(비판)할 수 있고, 일(희망)을 할 수 있으며, 어디든 이동할 권리(자유)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런 ‘인권’을 가진 사람은 북한에 딱 한 명, 김정은이다. 그는 남한에 대고 온갖 막말, 폭언, 욕설을 제 마음대로 하고 2000만 인민을 위해 아무 일 안 해도 누구에게서 비판을 안 받는다. 전용기와 특별 열차로 국내 도처 비밀 별장에 유희를 다닌다.
이런 북한을 마주한 남한에서 2016년 9월 여야가 합의·제정한 ‘북한인권법’이 시행되었는데도 아직 ‘북한인권재단’이 출범조차 못 했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은 평양 눈치를 살피며 이 문제를 도외시해왔다. 재단 예산 92%를 삭감했으니 사무실 문조차 열지 못했고 당시 여당(현 야당)이 해야 할 이사 5명 추천을 지금도 안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문 정권 5년 내내 북한인권대사를 공석으로 방치했고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예산도 10분의 1로 토막 내 사실상 기능을 마비시켰다.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 제안에 4년 연속 불참하여 국제 인권 단체들의 지탄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세력이었던 진보 정당의 이런 모습은 수수께끼다. 선진국 정치권을 보면 ‘인권’이라는 말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중시하는 진보 정당에서 더 먼저, 많이 나온다.
북한 주민과 정권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북한 주민은 동포이자 통일의 동반자로 많이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야당 국회의원들이 정중히 호칭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엄밀히 독재자다. 제 고모부와 친형을 죽인 살인마고 인민을 굶기는 무능한 지도자다. 거기에 핵을 ‘국체’(국가 근본)라며 김정은 정권 10년 성과의 하나가 ‘핵 무력 완성’ 이라고 한다.
이런 비정상 집단과 평화 유지를 위해 남북 관계가 우선이라고 진보 정당 국회의원들은 주장해왔다. 남북 관계도 결국 북한 주민이 잘살게 돕자는 게 목적이다. 하물며 북한도 ‘주체사상’에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게 ‘인민 제일주의’ 라는 말이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우리 북한 동포”라고 곧잘 외친다. 그러나 정작 불모의 땅에서 독재자 김정은의 발굽 아래 짓밟힌 동포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전혀 모르는 척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내가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떳떳한 북녘 동포에 대한 사랑, 통일을 위한 애국심은 갖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기 바란다. 사람이 먼저인 ‘북한 인권’ 문제에 여야,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