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달 29~30일 열릴 민주주의정상회의의 공동 주최국이 되었다. 2021년 12월 바이든 대통령이 첫 정상회의를 주최한 이래 두 번째 회의다. 첫날 온라인으로 열리는 전체 회의에 이어 둘째 날에는 지역별 회의를 하이브리드로 여는 형태로 바꾸었다. 한국,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잠비아 4국이 각 지역회의를 주관하게 되는데, 한국은 반부패 의제에 집중해서 인도·태평양 지역회의를 맡게 되었다. 향후 국제 질서 정립에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의제로 주최국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부패 문제는 모든 나라의 골칫거리다. 부패는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왜곡해 경제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공정성과 형평성을 해쳐 체제를 불신하게 만든다. 이러한 해악으로 인해 유엔이 2003년 11월 반부패 협약을 채택했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고, 현재 140국이 비준한 상황이다. 국가들의 명목적 지지가 크다고 실질적인 부패 청산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유엔 반부패협약이 발효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부패 문제는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의하면 조사 대상 131국의 3분의 2가 0~100점 사이 부패 지수 50점 아래로 부패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2021년 유엔 총회가 반부패특별회의를 개최하면서 국제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부패 척결에 나서기를 촉구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은 민주주의 발전과 반부패 사이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낸 나라이다. 민주화 초기 정부들은 부패 문제 개선을 민주 정부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하고, 오늘날 반부패 총괄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신인 부패방지위원회를 설립한 바 있다. 2015년 청탁금지법이 제정되어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부패들이 크게 줄었고, 2021년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되어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려 했다. 이러한 법제화 과정은 계속되는 부패 스캔들에 대한 대응이었다. 장영자·이철희 금융 사기 사건, 전두환과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대 비자금 조성 사건,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의 끊임없는 뇌물 수수, 최근 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과 진행 중인 이른바 ‘50억클럽’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공분을 사는 부패 스캔들이 촉발제가 되었다.

법과 제도를 바꾼다고 자동적으로 부패가 줄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시민 참여가 있어야 반부패 효과가 나타난다. 시민단체들의 감시 활동이나 ‘낙천낙선운동’ 같은 부패 정치인 퇴출 노력, 국민신문고나 내부고발자 같은 제도의 활용이 주효했다. 시민참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기능적 역량이다.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감독기관과 법집행기관의 능력이 준수한 편이다. 또한 오늘날 행정한류 수출품으로 여겨지는 전자정부는 시민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주고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해 부패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한국은 아직 반부패 최우등국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반부패 제도화 경험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리더십을 갖기에 충분히 성공적인 스토리다. 작년 말 발표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을 중점 과제의 하나로 잡았다. 반부패 의제는 바로 법치주의와 연결되고, 민주화가 덜 된 나라들도 참여 동기가 높은 기능적 의제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 민주주의정상회의 주최를 계기로 역내 반부패 협력에 적극 나서면서 가치 외교를 빛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