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E.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 아닌 승리한 전쟁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반대로 승리한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웨버 대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생각해 본다.
4월 9일이면 웨버 대령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된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4월 웨버 대령의 서거 소식에 한국은 웨버 대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웨버 대령은 1951년 미 187공정연대 중대장으로 참전, 원주 전투에서 적의 공격으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 부상을 극복하고 현역으로 복귀하여 대령까지 군복무를 했다.
웨버 대령은 미국의 중·고등학생을 포함하여 미국 국민에게 잊힌 전쟁으로 인식되었던 한국전쟁의 가치와 한미 동맹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과 추모의 벽 건립,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이름이 미군 장병과 나란히 추모의 벽에 새겨지도록 한 것도 모두 웨버 대령의 헌신 덕분이다. 그의 마지막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웨버 대령은 치매로 본인의 가장 큰 소망이었던, 먼저 간 전우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을 기억하지 못했다.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웨버 대령을 추모하여 ‘윌리엄 웨버 대령 한미동맹상’을 만들고 지난해 10월 25일 첫 시상식을 가졌다. 웨버 대령의 뜻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전쟁과 한미 동맹에 대한 에세이 백일장을 열었고, 선발한 학생 6명에게 상장과 메달, 장학금을 수여했다.
웨버 대령 한미동맹상 에세이 콘테스트를 추진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한 지인은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에세이를 써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딸의 대답은 그를 놀라게 했다. 딸은 한국전쟁에 대해 글을 쓰면 담임 선생님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은 콘테스트 참여를 포기했다. 최근 설문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 절반 이상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한다. 북한이 침략한 사실마저 왜곡해 이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육사에서 한국전쟁 전사 교육 시간이 축소되었다고 하니 사회의 이런 모습도 결코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한국전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군 13만8000여 명과 미군 3만6000여 명이 희생한 전쟁이다. 미군들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180여 만 명을 파병했고 많은 젊은이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번영한 자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는 4월 13일에는 지난해 10월 돌아가신 웨버 대령의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의 안장식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다. 애널리 웨버 여사는 지난해 10월 25일 제1회 윌리엄 웨버 대령 한미동맹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오려고 했다. 부군 이름이 새겨진 메달과 장학금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널리 여사는 출국하기 1주일 전에 쓰러졌다. 재단은 시상식을 마치고 웨버 대령 메달에 애널리 웨버 여사 이름을 새겨 전달했다. 2022년 10월 30일 애널리 여사는 웨버 대령 메달을 전해 받고 감사 인사를 전한 뒤, 15분 후에 웃는 모습으로 영면했다.
재단은 올해 10월 웨버 대령의 추모 조형물을 파주 평화누리공원 미국군 참전 기념비 옆에 건립할 계획이다. 한국은 웨버 대령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웨버 대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웨버 대령의 1주기를 맞은 우리의· 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