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지난 6월 5일은 ‘세계환경의날’이었다. 1968년 스웨덴 유엔대사의 제안으로 1972년 6월 5일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가 열린 것을 계기로 유엔총회가 정한 날이다. 세계환경회의가 열린 배경은 1960년대 스웨덴 등 북구 호수의 산성화 원인이 독일 등의 공업화에서 날아온 오염물질임이 밝혀지면서 양자 협상이 한계에 부딪치자 국제협력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환경오염은 국제기준과 국제협력, 지역협력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1.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의 냉각장치 파열로 노심 용융이 일어난 중대 사고였으나, 1m 두께의 격납용기 덕분에 방사능 노출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정한 연간 피폭량(50밀리시버트) 기준보다 낮았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러나 비상사태 대비로 당국이 임산부와 미취학 어린이들의 대피를 공지하자 대상의 다섯 배인 10만 명이 대피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공교롭게도 사고는 최악의 원자력 재난과 은폐 시도를 그린 영화 ‘차이나 신드롬(China Syndrome)’이 개봉된 지 12일 만에 일어나 공포를 더 키웠다. 사고 나흘 뒤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현장을 찾아, 정치인으로서 “미국은 신규 원전을 짓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후 미국이 원전 건설 허가를 내준 것은 2012년이었다. 미국인 최초로 1962년 지구궤도를 비행한 우주인 출신의 존 글렌 상원의원은 방사선 노출이 자연방사선이나 엑스선 촬영 정도라고 설득에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2.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RBMK 노형)에서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터진다. 소련의 낙후된 원전기술과 허술한 관리가 빚어낸 재앙이었다. 격납용기조차 없던 원자로는 증기폭발과 수소폭발로 불바다가 되고, 방사성 강하물은 유럽과 북미지역까지 퍼졌다. 소련 당국의 사고 축소와 은폐로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실치 않다. 당시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폐쇄적이고 탄압적이던 소련을 개방하려던 차에 체르노빌 사건이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소련 체제는 1991년 붕괴했다.

#3.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 원전(BWR 노형)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일본 혼슈 지방에 140년 만의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18m 높이의 사상 최대 쓰나미가 비상 디젤 발전기를 덮치면서 번진 사고였다. 독일·스위스·벨기에의 탈원전 선언 등 세계 원전산업은 지각변동을 겪는다. 사고 12년 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쟁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실체는 무엇인가.

* 삼중수소 위해성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약125만톤, 2021.4 기준)에 든 삼중수소(약2.2g)는 삼중수소수(水)로 환산하면 15g(ml) 정도다. 일본은 이를 연간 배출량 0.41g(22조 베크렐) 이하로 맞춰 매년 태평양에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해양과학기술원이 IAEA 공동연구로 검증된 해양확산모델을 써서 2023년 3월 이후의 연간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10년 후 우리 해역의 삼중수소 증가는 기존 해수 농도(약 0.2베크렐/리터)의 1/10만 정도로 극히 미미한 것으로 예측됐다. 참고로 강물은 삼중수소가 1베크렐 수준이고, 음용수 기준(WHO)은 1만베크렐/리터다.

* 삼중수소 이외 다른 방사성 핵종에 대한 우려

후쿠시마 오염수는 방류 전에 다핵종제거설비(ALPS; Multi-nuclide Removal Facility)로 반복처리해 삼중수소를 제외한 62개 핵종을 제거한 뒤 방사능 배출 기준 이하로 방류하는 것으로 돼 있다. 관련해서 참고가 될 만한 데이터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간 방사능 물질은 오염수 방류에 비해 수천-수만배로 많았는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1993년 이후 계속 측정한 우리 해역의 방사능 농도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 일본 측 발표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

일본이 정확한 데이터를 내놓는 것은 대전제다. 그 확증을 위해 IAEA가 계획과 절차를 리뷰한다. 일본이 제공한 데이터의 검증을 위해 IAEA는 독립적으로 시료 채취와 분석을 거친다. 그 조사단에는 한국·중국 등의 전문가도 참여한다. 국제기준도 국제기구도 다 못 믿겠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이기를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해양 방류에 대한 논란

바다의 경이로운 자정 능력과 경제성 때문에 나라마다 엄청난 오염물질을 바다에 쏟아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72년 런던협약이다. 그럼에도 오염물질을 제거한 처리수를 해수로 희석시켜 방류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해양 방류는 국제적으로 합법이다. 그 기준을 특정 국가가 불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4. 심각한 원전 사고 발생은 확률적으로는 매우 낮다. 통계상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피해가 덜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는 가장 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장기간에 걸쳐 확산되고 그 피해가 암이나 돌연변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원자력 특유의 공포 이미지 탓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정보가 왜곡 전파되는 경우 사회적 불안이 더 증폭되고, 결국 피해는 애꿎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앞서가는 대한민국에서 과학적 이슈가 정치적으로 왜곡돼 혼란과 분열을 빚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한·중·일 3국이 동북아 원자력 안전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상생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에 대한 환경영향 모니터링도 지역 상생협력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원자력 외교 역량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