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관동(關東) 대학살 100주기다.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 발생 후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퍼지며 수많은 조선인이 자경단 등에게 학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식민 본국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량 인종 학살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독립신문은 살해된 조선인을 6661명으로 보도한 바 있으나 아직 정확한 학살 숫자는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학살된 명백한 사건임에도 100년이 된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사과는 물론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도 기울인 적이 없다. 이를 보다 못한 일본 시민 단체 ‘봉선화’가 1982년부터 40여 년에 걸쳐 당시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증인들 이야기를 추적하고 기록하면서 학살의 면면이 세상에 드러났다(조선일보 8월 22일 자). 또한, 2003년 일본 변호사연합회는 ‘관동 대진재 인권구제 청구 사건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정부가 유발한 책임이 있다며, 고이즈미 당시 총리에게 사죄와 진상 규명을 권고했다.
1923년 관동 학살 직후 의회에서도 나가이 류타로 의원을 필두로 올해 스기오 히데야 의원까지 지속적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지만 일본 정부의 답은 없다.
한국 정부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공식적 사과 요구는 물론 공동 조사나 자료 공개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관동 대학살 사건은 이렇다 할 진상 규명 없이 100주기를 맞게 됐다.
한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아픈 역사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다. 국회에서 관동 문제를 천착하는 이유다. 올해 3월, 여야 국회의원 100명과 함께 ‘관동 대학살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다시 대표 발의했다. 법안 제정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이 법안은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될 것도 아니고,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을 일도 아니다.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조사하고 밝히면 되는 문제다.
특별법 제정과 함께 한국 정부는 진상 규명을 위해 공식적으로 피해자 유해 반환과 같은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나 자료 수집을 일본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지만, 조선인 학살 증거 자료는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협조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진정한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