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 저는 진로를 바꾸어 산업체에 취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2주 전 학생과의 대화 시간(타운홀 미팅)에서 K군이 한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연구가 좋아 학문의 길을 계속 걷고 싶었는데, R&D(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 정부 정책을 보고 진로를 빨리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당시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 연구비 삭감은 일시적인 일이고 내년부터는 다시 정상화되지 않겠느냐고 용기를 주려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얼마나 공감을 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R&D 예산 삭감으로 받았을 실망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2024년도 정부 연구비 예산안 감축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예산 삭감이 갑자기 이루어졌다는 점과 일괄 삭감이라는 데 있다. 소통 부족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대통령의 지시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 돌고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여러 차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때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한 분이 단체 기합 주듯이 일괄 삭감을 지시했을 리 없다. 시행 과정에서 소통의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급히 하다 보니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이 부족했다.

뒤늦게나마 정부와 국회가 삭감된 R&D 예산의 일부를 회복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여야 모두 이 문제를 정쟁의 늪으로 끌고 가선 안 된다. 논란만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신진 연구자 보호다. 연구비 감축에 대한 논란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은 R&D에 대한 국민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필자도 국민들의 지지가 이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R&D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임이 확인되었다. 연구비 삭감에 대한 역설적인 소득이라 생각한다. 국가 미래를 짊어진 신진 연구자들은 든든한 국민적인 지지를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6월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기념식에서 또다시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R&D 혁신이 이뤄지면 연구비를 증액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말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진심이라 생각한다. 국회의 예산안 협의에서 신진 연구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각 대학과 연구소도 이들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로는 선진형 R&D 체계 혁신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되기 위한 도전 연구를 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야 하고, 정부는 실패 용인 제도를 활성화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어야 한다. KAIST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80% 이상으로 평가되는 연구 과제는 지원하지 않는다. 실패 연구소를 설립하여 ‘망한 과제’ 경진 대회를 열어 상을 준다. 연구비는 오로지 연구에만 사용해야 한다. 혹시라도 연구비를 취업자 숫자 늘리는 데 사용하면 안 된다. 중소기업 지원 연구비가 다른 목적으로 새지 않게 해야 한다. 지방 활성화를 위한 연구비도 마찬가지다.

셋째로는 연구 현장의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 KAIST는 연구비 감축 발표 이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KAIST 자체 예산이 삭감된 부분도 있지만, 외부에서 따오는 연구비도 약 15~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학생과 포스트닥터(박사 후 연구원)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긴축하기로 했다.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가니, 줄일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의 인식이라 생각한다. 연구비는 국민들이 내는 혈세다. 더욱 절약하며 결과로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귀중한 중용(中庸)을 얻은 도전이 있어야 역사가 발전한다”고 했다. 이번 계기로 혁신을 이루어 내면 R&D 예산 논란은 “귀중한 중용을 얻는 도전”이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K군, 이제 힘내요! 국민들이 있잖아요.” 그때 좀 더 자신 있게 말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