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는 한국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지속적 휴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길 촉구한다. 임시 휴전은 수주간 끊임없이 계속된 전쟁에 처음 나타난 희망의 신호였으나,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물론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이 주어질 수 있다면, 특히 의료 물자·식량·물에 대한 접근성이 허락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막대한 수요에 대응할 구호 물자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이러한 일시적 중단은 턱없이 부족한 조치다.
우리는 병원들이 영안실로 전락하고 심지어 폐허가 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병원들은 포위·봉쇄된 채 공습, 탱크 포격, 총격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들과 의료진이 사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의료 시설에 178건의 공격이 가해져 의료 시설 내부에서 근무하던 의료 보건 종사자 22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직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진은 몹시 지치고 절망한 상태다. 이들은 중증 화상을 입은 아동들의 사지를 마취제나 소독 처리된 수술 도구도 없이 절단해야 했다. 사람들이 고통으로 죽어간다. 이스라엘군이 강제한 대피 조치 때문에 몇몇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환자들을 두고 떠날지, 혹은 환자의 목숨을 위해 뒤에 남을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다. 이렇게 잔혹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다국적 직원들로 구성된 긴급 대응팀을 가자지구로 보내 팔레스타인 동료들을 지원하며 의료 시설들의 의료 및 수술 역량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의료 지원 활동은 엄청난 사상자 수, 파괴된 인프라, 연료를 포함한 필수 물자 부족, 불안정한 치안 상황 탓에 극도로 제한받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3명이 사망했고, 더 많은 직원이 가족을 잃었다. 다른 수많은 동료가 부상을 입었다. 기타 인도주의 단체들 또한 직원 수십 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2007년부터 이스라엘 봉쇄하에 놓인 가자지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군사작전 개시 이후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에 “완전 봉쇄” 조치를 단행했으며, 가자지구에 발이 묶인 민간인 230만여 명을 위한 물·식량·연료·의료 물자 반입을 금지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에도 엄격한 제한을 가해,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한 지원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이스라엘군의 전면 공격은 하마스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전역과 그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해지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는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의료 보건 체계는 붕괴되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에 따르면, 1만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절반이 아동이었다. 가자지구 주민 200명당 한 명이 사망한 셈이다. 수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가족들은 건물 잔해 속을 뒤져가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신을 찾고 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에 따르면, 최소 17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민간인들은 가자지구 남부 지역으로 강제 피란해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해당 지역까지 폭격하고 있다. 가자지구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Khan Younis)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긴급 대응팀은 극심한 폭격과 공습 후 부상자가 대거 유입되었다고 전했다. 열악하고 과밀화된 환경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인도적 구호 물자에 의존해 간신히 생존하고 있던 난민들이 거주하는 캠프들도 이러한 공격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속적 휴전만이 수천 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이 더 일어나는 일을 막고 절실히 필요한 인도적 구호 물품을 가자지구 내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가자지구로 인도적 구호 물자가 충분히 반입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감독 체계가 구축될 것을 촉구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한국 정부 역시 해당 사태를 위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가적 대량 살상 방지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국경없는의사회 응급실 의사가 가자지구 병원에서 수술 일정 기록용으로 쓰던 화이트보드에 적은 문장이다. 총소리가 잦아들고 진정한 파괴의 참상이 드러날 때, 한국 정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