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는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야 하는 지고(至高)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안타까움을 넘어 걱정이다. 특정이념이나 고정관념에 경도된 극단적 주장이 국론분열을 낳고 북한은 이같이 취약한 공간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용어혼란전술이 활개를 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자주’를 주한미군 철수 ▲'평화’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와 한반도 비핵지대화 ▲'민족대단결’을 국가보안법 폐지와 공산당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등으로 해석하고 그 이행을 요구해 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무심코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세력들은 북한주장에 동조한다. ‘주체’, ‘우리민족끼리’, ‘전쟁이냐 평화냐’와 같은 레토릭도 같은 선상에 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쓰고 있는 국가안보 관련 용어 가운데 국체(國體)에 맞지 않거나 논란 소지가 있는 것을 살펴보며 대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반(反)국가세력’을 ‘반헌법세력’이나 ‘반대한민국세력’으로 개칭할 필요가 있다. 반국가세력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므로 보다 특정화하자는 것이다. 국가는 영토, 주권, 국민의 3요소만 갖추면 되므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부도 국가일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도대체 국가를 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마녀사냥이다”는 논박에 답변이 옹색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나라는 사회주의나 연방제 통일국가가 아닌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국가, 통일이라는 점을 보다 명백히 하는게 옳다.
둘째, ‘대북심리전’을 ‘북한 자유화운동’ 이나 ‘대북 전파프로젝트’로 개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리전’은 군사용어인데, 정부와 민간이 사용하면 전(戰)이라는 단어로 인해 호전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군과 국정원을 제외한 여타 정부부처와 민간은 보다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는게 좋다. 현재 대북심리전은 김정은체제를 맹목적으로 비난하기 보다는 인류보편적 가치와 한류·외부세계 소식을 전파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김정은을 호칭할 때 ‘국무위원장’ 표현보다는 ‘당총비서’ 또는 아예 직책없이 ‘김정은’으로 부르는게 헌법정신과 국민정서에 보다 합치한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남북관계 특수성을 고려하여 북한을 국가에 준해 예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김정은을 호칭할 때는 국가(國)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 국무위원장이 아니라, 무리(黨)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당총비서’로 부르는게 맞다.
김정은의 핵위협이 도(度)를 지나치고 있다. 우리 사회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다양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정확한 정세관과 현실인식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김정은의 통일전선전술 책략으로부터 보호하고 더 나아가 자유 통일한국을 주도적으로 건설해 나가기 위해서는 안보용어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확한 사용이 중요하다.
바야흐로 지금은 네이밍(naming)의 시대이다.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양하고 하나로 결집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일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효과’(brand identity effect), 즉 소비자의 태도를 호의적으로 바꾸고 구매를 증진시키는 밀도있는 노력이 가미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