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 교육 예산’ ‘신입생 전원에 노트북 지급’….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교육교부금의 포퓰리즘적 집행 사례다. 교육청 수입은 급증하는데, 돈 쓸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잉여 예산을 기금 형태로 쌓아 놓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모두 21조4000억원의 기금을 쌓아 놓았다. 매년 내국세 수입의 20.79%를 자동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너무 많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국가 곳간이 텅 비었는데, 교육청은 곳간이 넘쳐난다. 이게 정상인가.
초·중등 예산은 비만으로 동맥경화에 걸린 반면, 고등교육은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6~17세 학령인구는 2020년 548만명에서 2030년 407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한국 초등학생은 16.6명으로 영국(19.9명), 프랑스(18.8명)보다 적고, 중등학생은 12.1명으로 미국(15.2명), 일본(12.2명), 영국(17.3명), 프랑스(13.0명)보다 적은 수준이다(OECD 자료).
반면 초·중등 학교에 지원되는 교부금은 내국세 증가로 2020년 53조5000억원에서 2030년 89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초·중·고 공교육비는 OECD국가 최상위권이다. 중·고생 1인당 공교육비(1만4978달러)는 OECD 국가 중 2위다. 반면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1만1290달러)는 최하위권이다. 미국(3만4036달러), 영국(2만9911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 중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초등학생(1만2535달러)보다 적은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그리스·콜롬비아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초·중등과 고등교육 재정 투자 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넘치는 교부금을 주체하지 못해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6월 국무조정실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3년간 교부금 운영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총 97건, 282억 원 규모의 위법·편법 사용, 낭비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올해 감사원 감사에서는 각 교육청이 지난 3년 간 42조 6000억원을 불필요하게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1971년 의무교육 실시를 위한 재정 확보와 지역 간 학교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도입할 당시 학급당 학생 수는 70~80명이었는데, 현재 25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가 예산 규모는 5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법은 그대로여서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세금이 남아돌면 대학 등 재정 형편이 어려운 다른 교육 분야로 돌리거나 저출생, 지방 소멸,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 계층과 복지 사각지대에 쓰도록 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는 시도교육감과 각종 교원 단체 등 교육 기득권의 벽은 여전히 높고 강고하다. 정부가 지난해 말 교부금 일부를 떼어 대학에 지원하는 특별회계 신설법을 내놓자 야당은 “동생 돈 뺏어서 형님 먹여 살린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결국 대학으로의 교육세 전입금은 정부안인 3조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난 채 겨우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처럼 임기응변식의 손질로는 교육교부금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 도입 반세기가 지난 내국세 연동제를 국가 재정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게 시급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방교육재정도 필요한 비용을 계산한 뒤 예산을 배정하거나 교부금을 국내총생산(GDP)과 학령인구 비율과 연동해 산정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하지만 교육청과 교원 단체, 일부 학부모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현 교육 예산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 우리는 2류, 3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교육 재정 운영 효율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